4단계: 성령을 우리 속에 두고 율법을 행하게 해 주신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에스겔 36장 27절)
분명히 말씀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겠다’고 말합니다. 요즘 새로운 번역은 ‘내 영’이라고 번역했는데, 히브리어로는 ‘루아흐(רוּחַ)’입니다. ‘영’ 혹은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3단계인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신 후, 성령을 내재시켜 주시고 율법이 행하여지도록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우리의 육신의 본성 즉 우리의 타락한 이기적이고 부패한 정욕적인 본성에는 마귀가 들어오지만 3단계에서 창조되는 새 영속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본성과 같은 성령이 들어오십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이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비싸고 좋은 차를 아들에게 선물하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미숙한 운전 실력을 너무 잘 아니까 계속 사고를 내어 결국 쓸모없는 차가 됨으로 아버지가 그 차를 선물로 줄 때에 아예 그차를 아주 능숙하게 운전할 전문 기사를 같이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아예 운전을 그 기사에게 맡기면 되듯이 우리가 새로운 본성, 거듭난 본성을 창조 받았을 때, 성령께 맡기지 않고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운전할 때는 넘어질 수 있고, 넘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맡기지 않을 때는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4단계는 하나님의 본능적 사랑, 곧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아가페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이타적인 사랑이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단계가 됩니다. 거듭난 상태입니다. 이 때에도 우리는 성령께 계속 맡겨야 합니다. 위의 예에서 아들이 새 차를 선물을 받았어도 운전을 전문기사에게 맡기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을 선물 받았어도 즉 거듭난 이후도 계속 성령께 전적으로 맡겨야만 합니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속에 마귀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금세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 왜 거듭난 사람은 두개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앞전 단계인 3단계의 에스겔 36장 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보면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고 또 추가로 이루어지는 일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는데 '굳은 영', 곧 옛 본성은 제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굳은 본성은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윗 부분은 다 없애고 뿌리(그루터기)만 남겨두는 것입니다.
사단이 아직도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 죄된 본성을 남겨두어 때때로 거듭난 본성을 공격하고 유혹하도록 허용함으로 거듭난 이후에도 계속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뜻대로 거듭난 본성을 운전하여 일곱귀신이 들어간 상태로 지독한 영적교만의 병에 걸려 거의 치료 불가능한 상태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을 가끔 볼수 있습니다. 거듭난 경험을 한 어떤 사람들이 거듭난 이후에도 거듭나는 과정에서처럼 계속 성령께 맡겨야하는 것을 알지못해 또는 자만하여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개의 본성을 통해 더 깊은 회개와 풍성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거듭난 본성에는 성령께서 내재하기 때문에, 죄의 존재에 거의 감각이 없던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보다 죄의 흉악함이 더 뼈저리게 느껴지므로 회개는 더 깊어지고, 이런 흉악한 죄된 상태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커집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마귀의 본성만 가지고 있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 마귀의 본성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전(殿)’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장 16절) 우리는 하나님의 처소이며, 성령이 거하는 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아무데나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시는 자리가 정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 그 속에서만 성령이 거하실 수 있습니다. 혹 다른 목적으로 성령을 달라고 떼를 쓰면 악령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즉 교만의 영이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짓 열심의 영, 거짓 방언의 영, 위선의 영이 들어와 성령 행세를 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에 속아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갖 나쁜 짓을 일삼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는 거짓 성령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교회 장로가 교회 돈을 횡령하여 달아나며, 교회 권사가 교인들을 속이고 이간질하는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미 육신의 본성으로 타락해 버렸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과 함께 계실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에 성령께서 들어가셔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하시겠다고 하셨을까요? 율법이 준수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율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대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용서하고, 내가 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 들어오신 성령, 내 속에 창조하셨던 새 영과 새 마음, 곧 자기 본성을 움직여서 그분이 용서하고, 사랑하고, 율법을 지키고, 다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