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단계가 하나 있습니다. 즉 2단계에서 3단계 사이의 중요한 과정으로 이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바로 얍복강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야곱처럼 거듭남의 과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1)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는 훈련은 살 수 있고, 거듭날 수 있는 훈련입니다.
2)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3) 십자가의 사랑은 죄를 녹여내고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게 해줍니다.
4) 영성훈련을 통하여 은총과 간구의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애통과 통곡이 일어나며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게 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십니다. 죄 때문에 우리의 상태가 이상하게 되었으므로 우리를 회복시키는 능력은 초자연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인간의 심령을 장악하고 있는 악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습니다.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의 보혈을 통해서만 죄에서 정결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의 은혜만이 우리로 타락한 본성의 경향들을 저항하고 굴복시킬 수 있게 합니다.위의 네 가지 과정의 영성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제 각기 내용을 자세히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는 훈련은 살 수 있고, 거듭날 수 있는 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래의 성경 말씀들과 같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했고, 세례(침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선언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과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 이 선택은 우리가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주신 구원이 이루어진 전모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 바라봄이 있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수기 21장 9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4〜15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한일서 3장 1절)
이 네 개의 성경절을 꼭 암송하시고 매일 바라봄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주어진 대로 그분의 생애를 조목조목 연구하고 깊이 명상(말씀을 반복해서 되새김질 하는 것)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훈련에 관해서는 7장 '영성훈련-거듭남의 중요한 과정'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땅 속의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성경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파내야 하고,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 품성이 완전하신 그분께 윤리적으로 동화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놀라운 능력을 통해서 그분의 의를 받음으로써 그분의 품성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역사한 결과를 나타내 보이며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케 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목적의 단일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연구하고 명상(말씀을 되새김질 하는 것)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함으로 그분을 바라봐야 합니다. 매일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높이 쳐들린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 기적적으로 치료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쳐다보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들의 회복을 위하여 준비된 방법을 의지하므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오늘날의 죄인인 우리도 예수님을 쳐다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뱀에게 물린 자들이 쳐다보기를 동의하기 전에 멈추고 의심과 의문을 일으켰더라면 그들은 모두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의 독, 곧 죄에 취한 우리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거절하면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을 쳐다보는 일이 우리의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쳐다봄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눈을 뜹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됩니다.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빛과 십자가를 서로 일치하는 위치에다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비춰 나오는 빛과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보는 죄인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죄인의 시야는 하나님께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심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수록 우리의 죄가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싫어지게 됩니다.
한편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증오심과 함께 죄인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은 진리요 빛이요 사랑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논박할 수 없는 논증이 됩니다. 아무도 그리스도를 억지로 바라보도록 강요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리라.”는 간절한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장 3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자신이 땅에서 들려 죽임을 당할 것을 아셨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구주이심을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죄인이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구원의 오묘한 이치가 죄인의 마음을 깨우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죄인을 회개로 이끄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주목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돌과 같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에 감명을 주며 마음에 통회하는 생각을 일으켜 줍니다. 십자가를 쳐다볼 때 죄인도 십자가를 지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희생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마음이 녹아지고 깨어져서 자신을 하나님께 스스로 바치고자 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사랑은 죄를 녹여내고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게 해준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새 마음을 넣어 주십니다. 새 마음을 받은 우리의 생각과 욕망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며,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 창조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 곧 본능적인 사랑이 우리 심령에 기록되며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시편 40편 8절)나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으려면 십자가 아래서 회개와 믿음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고상하고 관대한 것은 무엇이나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명상할 때(예수님의 생애를 되새김질 할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게 남은 마지막 생명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시며, 실제로 새롭고 살아 있는 생명의 원칙이 죄로 더럽혀진 마음속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악의 동맹한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죄의 본거지를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번 십자가에 접근할 때마다 죄인의 마음은 부드럽게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나의 죄였다!”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4) 영성훈련을 통하여 은총과 간구의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애통과 통곡이 일어나며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슥13:1)게 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겔36:26)십니다.
영성훈련을 통하여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을 강하게 역사하게 됩니다.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로마서 5장5절), 구원 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이 죄인의 죄를 짊어지시고 말없이 용서하시고 당신의 가슴속에 묻고가신 그 십자가의 그 사랑 때문에 감격하여 애통과 통곡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스가랴 12장 10절) 그러면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게 됩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스가랴 13장 1절)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칠 때에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1. 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깨닫게 됩니다.
2. 나의 동기는 이기적이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평소의 행위 하나하나를 더럽혀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 나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고 그리스도의 피만이 나를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며 그분의 모습을 본받아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의 단 한 줄기 빛이라도, 혹은 그리스도의 순결의 단 한 번의 섬광이라도 나의 영혼에 비칠 때 마음의 더러움 하나하나가 가슴 아플 정도로 분명히 보여 품성의 결점과 결함을 남김없이 드러냅니다.
5. 그것은 부정한 욕망, 불신의 마음, 더러운 입술 등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6. 죄인의 눈에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한 불성실한 행위가 분명히 보이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하여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흠 없는 인격을 바라보며 자신을 몹시 싫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 인도받아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들의 죄가 찌른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율법이 무엇인지 양심에 분명히 새겨져, 사악한 생활과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죄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어 외칩니다. “아아, 도대체 죄란 무엇인가! 죄에 사로잡힌 자를 구원하기 위해 이러한 희생을 필요로 했나? 우리로 하여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이 모든 사랑, 이 모든 고통, 이 모든 수치가 필요했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죄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를 위해 늘어뜨려져 있는 쇠사슬의 길이를 알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그 무한한 희생의 일부를 깨달을 때 마음이 통회로 녹아져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