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참된 구원

by blogmaster posted Nov 05,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강의 오디오 듣기(MP3 다운로드, 데이터 주의)
강의 오디오 듣기(팟캐스트, 데이터 주의)

 

죄를 버리고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을 때 구원을 받은 것

‘구원(救援)’이라는 말은 영어로 ‘샐베이션(salvation)’인데 헬라어인 ‘소테리아(σωτηρία)’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소테리아’는 1차적으로 ‘구덩이에 빠진 이를 건져내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의미가 아닌 본인이 자기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구원이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지난 글에 이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몸의 병이 나은 것도 구원받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최고의 소원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 죄의 삯이 사망이기에 인간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죄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죄에 대하여 지극히 피상적인 개념과 경험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 용서에 우리 자신들의 죄를 다 맡기지 못하고 죄의 껍데기만 맡기고는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은 예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원은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구원과는 많이 다릅니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용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구원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구원을 받았노라 자기 최면을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믿음 앞에 오는 은혜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하고 간과해 버리면 구원의 진면목을 알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서 ‘은혜’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어마어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고 영원해서 그 속에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은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그 은혜 속에 담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우리가 원하는 것만 부분적으로 혹은 피상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용서를 받고 그 나머지 죄는 죄가 아닌 것처럼 용서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죄를 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죄를 짓지 않아서 죄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은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아 죄가 없어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 종려나무는 고대로부터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돌아올 때 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요한계시록 7장 9절)

그런데 누군가 질문을 합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요한계시록 7장 13절) 그에 대한 대답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 7장 14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서 모든 죄를 용서 받은 사람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하늘은 이처럼 모든 죄를 용서받아서 죄가 없어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즉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저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좀 낫지 않나요?”라고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냉정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장 23절)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행하고 있는 불법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면 그것이 자신이 받을 구원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절대 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고, 병자들을 고치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헌금도 많이 했다고 해도 그런 것들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 많은 세리와 창녀나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한편에서 죽었던 강도 같은 사람들, 즉 평생 죄만 지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고 용서받아서 죄가 없어져서 영원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그와는 반대로 가장 믿음이 좋다고 소문났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슬프게 통곡하고 우셨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를 보고 통곡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들과는 같이 식사하시고 같이 웃으시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들을 영접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거절한, 죄가 무엇인지 알기를 거절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양심을 바닥까지 뒤엎어 드러나게 하신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에는 악한 생각이 가득하고 음욕과 정욕과 탐욕과 이기심과 교만이 가득한데도 그런 죄들을 내놓고 용서받을 생각은 안 하고 있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 즉 ‘위선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늘은 모든 죄를 용서받아 의인이 된 사람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가난으로부터, 혹은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죄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갈 수 없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 동안은 땅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병은 나았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교만과 이기심의 죄가 용서받지 않은 채로, 없어지지 않은 채로 여전히 그들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예수님이 “구원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신 대상은 창녀와 세리였습니다. 창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누가복음 7장 50절) 말씀하셨고, 세리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누가복음 19장 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를 버리고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을 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아직도 돈을 사랑합니다. 돈에 붙어 있는 욕심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가서도 영원히 살고 싶고 이 땅에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교회가 돈을 사랑했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교회에서조차 돈 많은 사람들이 대접을 받는 시대입니다. 물론 돈으로 하나님 앞에 크게 헌신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돈의 욕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월세로 사는 사람은 전세를 얻고 싶고, 전세로 사는 사람은 아예 집을 사고 싶고, 27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32평으로, 32평은 48평으로 이사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받지 않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넘쳐나는 ‘싸구려 구원’과 ‘가짜 구원’에 안주하지 말고 ‘진정한 구원’, 죄에서 완전하게 놓여나는 ‘참된 구원’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참된 구원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로마서 6장 23절
  • 에베소서 2장 8절
  • 요한계시록 7장 9절
  • 요한계시록 7장 13~14절
  • 마태복음 7장 22~23절
  • 마태복음 23장
  • 누가복음 7장 50절
  • 누가복음 19장 8절

  1. 02.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885
    Read More
  2. 03. 믿음이란 무엇인가?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591
    Read More
  3. 04. 죄를 온전히 맡기는 믿음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564
    Read More
  4. 05. 생명을 낳는 진정한 믿음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368
    Read More
  5. 06. 은혜의 의미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477
    Read More
  6. 07. 주시는 은혜와 받는 은혜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259
    Read More
  7. 08. 은혜의 근원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288
    Read More
  8. 09. 은혜와 회개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298
    Read More
  9. 10. 성경이 말하는 회개

    Date2019.11.04 Byblogmaster Views800
    Read More
  10. 11.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회개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271
    Read More
  11. 12. 회개의 주인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227
    Read More
  12. 13. 회개라는 값진 선물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314
    Read More
  13. 14. 절망 속에서 피어난 회개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269
    Read More
  14. 15. 주시는 믿음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396
    Read More
  15. 16. 구원의 의미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359
    Read More
  16. 17. 참된 구원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224
    Read More
  17. 18. 죄란 무엇인가?

    Date2019.11.05 Byblogmaster Views489
    Read More
  18. 19. 죄와 율법

    Date2019.11.06 Byblogmaster Views269
    Read More
  19. 20. 죄의 본질

    Date2019.11.06 Byblogmaster Views333
    Read More
  20. 21. 죄의 근원

    Date2019.11.08 Byblogmaster Views21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Nex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