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씨로 거듭난 예수님의 유전자를 닮은 구원받은 자들을 보게 된다는 것
이번 글에서는 속건제라는 제사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사야 53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이 말씀 속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건제(贖愆祭)는 히브리어로 ‘아샴(אָשָׁם)’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것’, ‘벌’ 등을 의미합니다. 속죄제(하타아)가 ‘죄’를 드리는 것이라면 속건제는 ‘부끄러운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속죄제와 아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속건제는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 학자는 속건제를 ‘배상제’라고도 했습니다.
레위기 5장 14절부터 6장 7절에 의하면 속건제는 특별히 십일금이나 헌물을 도적질하는 등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범죄 하였거나, 다른 사람에게 범죄 하여 남의 물건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그 물건의 가치에 5분의 1, 즉 20%를 더하여 배상을 한 후에 그 범과에 요구되는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려 속죄하는 제사입니다.
여기서 배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00만원에 상당하는 이웃의 돈이나 물건을 횡령 또는 탈취하였다면, 본물 100만원과 함께 배상 이자격으로 그 가치의 20%인 20만원을 더하여 배상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배상이자가 상당히 높은 이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갚기 위해 십자가에서 치르신 희생이 얼마나 큰 이자를 지불한 희생이었는지를 나타내기 위한 모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범죄 하여 죽게 된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인자, 즉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람이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기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결국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때 예수님의 인성만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계신 신성이 함께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야 하는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 사람(예수님의 인성)만 죽으면 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약 죄 없는 존재인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사람 대신 죽었다면 우리 중 한사람의 목숨은 대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인류의 죄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주보다 크신 분이고,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죽으셨다는 것은 무한한 희생이 아닐 수 없고, 온 인류의 죗값을 다 갚기에도 넉넉한 무한한 배상이자가 지불된 희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노라” (예레미야 31장 3절)
이어서 이사야 53장 1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씨’는 ‘종자’라는 뜻이고 ‘유전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씨를 보게 된다는 말은 예수님의 씨로 거듭난 예수님의 유전자를 닮은 구원받은 자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성 자체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실 수 없는 영원하신 분이 죽임을 당하신 그 고통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 놀라운 희생을 우리가 믿어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씨앗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이사야 53장 10절
- 레위기 5장 14절부터 6장 7절
- 예레미야 31장 3절
- 이사야 53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