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이번 글은 아주 유명한 성경절로 시작하겠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태복음 5장 38〜39절) 눈은 눈으로 갚으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말일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eye for the eye, tooth for the tooth)’라는 규정을 영어로는 흔히 ‘팃포탯(tit-for-tat)’이라고도 하는데, 구약 전체를 통틀어 세 번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21장 24절과 레위기 24장 20절, 신명기 19장 21절에 나오는데, 특히 신명기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재판에 관련되어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은 채무자가 빚의 100%를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원리에 기반한 규정입니다. 현대인들의 경제관념에는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갚는 것이 도리라고 여길 만도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동족끼리 절대 이자를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즉 원금만 다 갚으면 채무에서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본인이 반대로 채권자가 되었을 때 채무자에게 돈을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상한 경제관념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천만 원을 상대에게 빌려주었는데 그가 갚을 능력이 없다면 그 돈을 기어코 받아내려 하지 말고 다시 천만 원을 얹어주라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돈 받으러 갔는데 상대가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 뺨까지 맞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혹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남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법정에 가기 전에 먼저 가서 그 사람과 사화(私和-오해, 원한을 풀고 화해)하고 돈을 다 갚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6절에 보면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호리’라는 말은 헬라어로 ‘고드란테스(κοδράντης)’라는 단어인데 아주 작은 돈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 원짜리 하나라도 완전히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네가 채무자가 되었을 때는 반드시 100% 갚아라.”입니다. 형제를 사랑한다면 그 형제의 마음과 양심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마지막 10원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다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요구한 것 이상 몇 천만 배로 우리의 죄의 빚을 갚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전부 이 원칙을 나타내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하늘의 집을 떠나신 다음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빚을 갚아 주시기 위하여 원수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중상과 모략과 핍박을 당하셨는지,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그의 삶은 뺨을 맞고 수염이 뽑히는 삶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인 자신의 몸을 찢어주시면서 끝까지 모든 빚을 갚아내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견뎌내셨습니다. “나를 때린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나이다.”(이사야 50장 6절)
이 격렬한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내놓는 사랑의 형제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38〜39절
- 출애굽기 21장 24절
- 레위기 24장 20절
- 신명기 19장 21절
- 마태복음 5장 26절
- 이사야 50장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