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주지 않으면
지난 글에 이어서 오늘도 마태복음 5장 31〜32절의 말씀을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하며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라.” 성경에는 우리 일상에서 종종 마주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들이 나옵니다. 그중에 이혼에 관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혼 문제에 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혼은 간음한 연고 외에는 결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장 24절의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이라”고 하신 축복의 말씀, 곧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27절) 하셨을 때의 그 형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세 분의 하나님이 서로에게 자신을 주어 ‘완전한 하나’가 된 아담이라는 열매로 나타났고, 이것을 다시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서로 사랑하며 상대방에게 자신을 주어 자녀로 인해 하나가 되게 하신 가운데 줄곧 이어집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면서 하나가 될 때의 모습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에 들어있고, 분리되었던 이들이 다시 하나가 됨으로 아들과 딸을 낳고 이들이 또 사랑하며 서로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자녀들을 낳는 것, 이것을 인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난 다음에도 이 결혼제도 만큼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셨던 이유입니다.
성경에는 ‘이혼당한 여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선 이 ‘이혼당한 여자’는 우리가 요즘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사회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표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알마나(אַלְמָנָה)’라고 하여 ‘버림받은 여자(forsaken woman)’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혼 이후에도 여전히 전 남편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회 내에서 오갈 데가 없는 최하층이 되고 맙니다. 룻기를 보면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보기에 상황이 하도 딱하니까 버림받은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명령을 하게 됩니다. 그래야 전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혼증서 없이 아내를 버린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멋대로 장가를 가게 되면 간음죄가 성립됩니다. 왜냐하면 이혼당한 여자가 간음을 해서 버림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해결책들이 원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이혼이라는 문제를 야기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들을 해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모습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장 28절) 이 말씀은 인류 최초의 결혼식에서 하나님께서 손수 해주신 주례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일부일처제에서 벗어나 자기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버리는 가슴 아픈 현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악용하는 이들에게 법의 취지를 상기시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두려워 말라 ~ 이는 너를 지으신 자가 네 남편이시라 그 남편은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니라”(이사야 54장 4〜5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는 ‘이스라엘을 위해 자기 자신을 구별하여 바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가서 2장 16절을 보면 솔로몬 왕이 사랑하는 아내 술람미 여인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면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을, 술람미 여인은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사랑으로 서로에게 속하여 더 이상 둘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계속해서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장 24〜25절)고 권면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이 땅에서 살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거룩한 사랑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그렇게 자신을 줄 수 있다면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요즘 세태에 새로운 바람이 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본을 따라 가족끼리 아끼고 사랑하면서 가정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31〜32절
- 창세기 2장 24절
- 창세기 1장 27절
- 창세기 1장 28절
- 이사야 54장 4〜5절
- 아가서 2장 16절
- 에베소서 5장 24〜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