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미움이라는 원수와 싸우다
이번 글에서는 마태복음 5장 10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핍박을 받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 핍박을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든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훨씬 더 어렵기 마련입니다. 팔복의 첫 번째와 마지막 여덟 번째의 공통점은 끝에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신 말씀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 산상수훈을 시작하면서 ‘영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맨 마지막에 다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천국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 두 가지 복이 대체 어떠한 복이기에 보상이 같은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죄를 싫어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죄에서 마음이 떠나게 됩니다. 누구든지 싫어하는 것은 안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서도 이타적인 희생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받는 복이 동일합니다. 둘 다 외부의 갖은 오해와 질시,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는 물과 기름이 나뉘듯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이십니다. 잃어버린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사단과 불가피한 투쟁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사랑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미움이라는 원수와 싸우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15〜18절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이 가진 죄의 본성과의 무서운 전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자아와의 처절한 투쟁 끝에 바울은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 24절)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공격할 때에도 동일한 말을 썼다는 점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조롱했던 이야기는 다름 아닌 “너는 다른 사람은 구원하면서 왜 너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느냐?”였습니다. 이것이 사단이 예수님께 대하여 할 수 있는 유일한 비난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고 말하는 정신은 “너도 화를 좀 내봐.”라는 본색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것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기도로 그 모든 이기심을 격파하셨습니다.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하며 돌보느라 자기 자신은 돌보지도 않을 때 우리는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 저 친구는 다른 사람은 구원하고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가?’, ‘바보인가? 과거에는 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더니 여차하면 내려와서 불을 퍼부으면 될 것이지 왜 저렇게 당하고만 있지?’ 이것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우리에게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먼저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순교자들 중에서 장작불에 타 죽어가면서 “이 무뢰한들아! 심판 때 보자! 지옥불에 타며 영원히 고통 받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라며 저주했던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스데반도 날아드는 돌을 맞으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사도행전 7장 60절)라고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분명히 이러한 스데반을 가리켜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말합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사도행전 6장 15절) 성경은 그가 예수님의 정신으로 충만하였다고 말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핍박을 받으면서 찢김을 당하여 죽임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의 고통과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를 죽이고 핍박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이 구원을 얻도록 기도해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정신’을 가졌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환란을 거친 성도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 7장 14절) 모든 보복과 복수의 정신으로부터 마음의 옷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자들입니다. 자기 동정과 이기심, 교만의 죄를 그리스도의 겸손과 이웃에 대한 희생의 피로 씻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감히 환란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마음자리를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10절
- 로마서 7장 15〜18절
- 로마서 7장 24절
- 사도행전 7장 60절
- 사도행전 6장 15절
- 요한계시록 7장 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