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
마태복음 5장 7절의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긍휼’이 뭐냐고 물어보면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 어려운 한자입니다. 이 ‘긍휼’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머시(mercy)’, 즉 ‘자비’를 뜻합니다. ‘머시’는 어원상 ‘선물(gift)’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마켓(market)’이라는 단어도 실은 여기서 파생했습니다. 긍휼은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긍휼이라는 단어를 ‘동정’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한자로 ‘동정(同情)’이라는 말은 ‘같이 느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 슬퍼하는 자의 슬픔이 나의 슬픔으로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동정입니다. 이 동정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특별히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과 동정을 본능적이라고 계속 표현하는 이유는 두 사람의 유전자가 같기 때문입니다. 유전자가 동일하면, 예를 들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딸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출가한 딸이 시댁이나 남편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 엄마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 딸의 상황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엄마와 딸 그 둘의 마음이, 유전자가, 종자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도 친정엄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날 때부터 냉랭하고 어두운 마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자비와 용서의 마음이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셨다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정심의 근원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유전자가 동일한 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과거 두레마을을 세웠던 김진홍 목사님이 일전에 탈북한 젊은이들을 데리고 전국여행을 하는 중에 하루는 식당에서 밥을 다 먹이고 추가로 빵을 좀 사서 나눠주는데, 축사를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탈북자 청년들이 서로 빵을 더 갖겠다고 쟁탈전을 벌이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욕심과 이기심이 그들로 하여금 무조건 빵을 하나라도 더 움켜쥐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너무나 굶주렸기 때문에 먹을 것 앞에서 체면이고 양심이고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배가 고프다면 분명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똑같이 배가 고플 텐데 나의 배고픔만 챙기느라 내 옆 사람의 배고픔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우리도 대부분 삼 일만 굶으면 똑같이 행동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시켜 주시지 않는 한 그 어떤 이웃도 사랑하거나 동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랑의 근원이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비와 동정의 근원이십니다. 이 내용을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그분은 가치에 따라서 우리를 취급하지 아니하십니다. 가치가 없는 인간을 당신의 피 값으로 엄청난 무한한 값을 가진 존재로 만드셔서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원한을 품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벌을 주려고 작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반역하는 자들에 대해 엄격함을 보이시는 것도 그를 통해 그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몸짓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은 이 사랑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일치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선하고 의롭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예레미야 31장 3절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사랑의 불은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으며 동정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한 그 사랑과 동정은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도 꺼뜨릴 수 없는 그 사랑의 불을 받지 않는 이상 결단코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하거나 동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동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그 사랑과 동정의 불이 들어오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무한한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그 동정과 사랑을 우리 모두가 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출애굽기 34장 6절
- 누가복음 11장 13절
- 예레미야 31장 3절
- 고린도전서 13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