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5장 8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를 향해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배가 가라앉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됩니다. 정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을 상기시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알다시피 현대인들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오늘의 세태가 우리의 영적 상태와 형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첫 머리에 그런 사람들을 향해 “심령이 가난해져야 한다”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예수님께 나아가면 갈수록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과 흉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더욱 뚜렷하고 분명하게 바라봅니다. 말년에 사도 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디모데전서 1장 15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절감하고 주님의 은혜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에는 한결같이 ‘교만’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지만 구원을 얻는 이들의 마음에는 ‘겸손’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용서하시고자 하는 자들을 먼저 회개시키십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서 이미 해 놓으신 용서를 받아들임으로 용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선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나오는 세리처럼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이사야 1장 18절)는 약속을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천국은 은혜의 왕국을 가리킵니다. 무력과 공덕으로 가는 왕국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로 가는 왕국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서가 지배하는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말은 마지막 여덟 번째 축복에 가도 똑같이 나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첫 번째와 여덟 번째 복에 예수님이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기둥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왜 복이 있고 천국이 저희 것인지는 나중에 살펴 볼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에게 위대한 초청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쉼은 은혜의 왕국, 용서의 왕국에서 쉬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고난과 질병과 슬픔 중에 살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 그는 용서받은 기쁨의 왕국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기꺼이 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누가복음 5장 8절
- 요한계시록 3장 17절
- 디모데전서 1장 15절
- 누가복음 18장 13절
- 이사야 1장 18절
- 마태복음 11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