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하다' 전부를 다 맡긴다는 의미
성소의 불은 하나님께서 죄를 도말하기 위해 내리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사사로운 목적으로 일으킨 불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레위기 10장 1〜2절을 보면 그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제물을 태우기 위해 하늘에서 내린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들어간 아론의 두 아들은 여호와의 불이 나타나 타죽고 말았습니다. 평소 술을 마시며 고기나 구워먹던 불을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죄와 양을 태우는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들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 죄는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컸습니다.
성소에서 죄인이 자기 죄를 양에게 옮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수를 해야 했습니다. 레위기 1장을 보면 모든 제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번제의 경우 안수가 중요했습니다. 레위기 1장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에 나오는 ‘안수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기대다’라는 의미의 동사를 썼습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안수라는 행위를 통해 죄 역시 인간에게서 양에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결국 안수하지 않은 죄, 죄를 양에게 전가시키지 않은 죄는 어떤 제사장이라도 사할 수 없었으며, 안수로 죄를 떠안지 않은 양은 속죄양이 아닌 그냥 보통 양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맺은 영원한 언약, 죄인의 죄를 뒤집어쓰고 아버지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겠다고 했던 그 언약을 끝내 이루셨습니다. 죄를 다 떠안은 속죄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 과업을 완수하고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장 30절)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 놀라운 희생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은 구원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번제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유대의 제사제도 중에는 매일 드리는 번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번제를 드릴 때에는 안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수 없이 그냥 양을 잡아서 아침 9시와 오후 3시에 드렸는데 이 번제는 성소에서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죄를 용서받고 싶을 때에는 반드시 제물로 드리는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했습니다. 죄를 옮기지 않으면 속죄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위기 1장 4절)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타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이렇게 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힘을 잃게 되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데에서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안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님께 죄를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믿습니다!”를 연발하고 통성으로 기도를 올리지만 마음속에 있는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머리를 내밀고 “너의 죄를 내게 씌워라!” “가시관을 내게 씌워라.” “너의 은밀한 죄를 내게 안수해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우리의 죄짐을 지고 가시는 여호와를 찬양합시다. 진정으로 용서받는 믿음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가슴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레위기 10장 1〜2절
- 레위기 1장 4절
- 요한복음 19장 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