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간을 향한 사랑의 발로
하나님의 율법은 단호합니다. 로마서 7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율법의 성격이 하나님의 품성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부모가 자식에게 대하는 것을 떠올려 봅시다. 부모는 자식이 다 커도 마냥 어리게 여깁니다. “이거 먹지 마라.” “저거 먹어라.” “차 조심해라.” “일찍 다녀라.” 이런 부모의 당부를 자식의 입장에서 마냥 잔소리로만 여기면 답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하는 말들은 모두 사랑의 표현이자 관심의 결과입니다. 그 말을 어기는 것은 그 말을 한 당사자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건강 생각해서 라면 먹지 마라”는 노모의 당부는 “좋은 음식 먹고 건강하게 살라”는 자식을 향한 애절한 부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골탕 먹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행동을 함으로써 율법을 어기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짓밟아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라는 명령 역시 인간을 향한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이를 오해했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사랑도 거부한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청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이셨던 예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신 방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교재였습니다.
아벨이 죽었습니다. 그의 죄는 제단 위에서 죽었고 얼마 후에 그의 육체도 분노한 형의 손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는 이제 부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벨의 희생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인 용서받은 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사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죄인의 죄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소의 번제단 중간에 그물로 된 석쇠가 놓이고 그 위에 나무를 올리고 그 나무 위에 양이 놓입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양을 열 토막을 내어서 나무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양 위에 보이지 않는 죄인의 죄가 오릅니다. 그리고 이 죄를 태우기 위해서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옵니다.
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위에 죄인의 죄가 올라가고 심판의 불이 내려와 어린양과 죄를 함께 태우게 됩니다. 그렇게 법에 의한 심판이 끝나고 죄인의 죄가 도말됩니다. 이를 창세기 4장 4절에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제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아벨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죄인의 죄를 도말하신 분, 불을 내리셔서 죄를 사르신 분, 하나님께서 제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양을 데리고 와서 제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 제물을 불로 태운 이는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옮기라 하실 때 옮기고 순종하라 하실 때 순종함으로 우리 모두 아벨의 제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로마서 7장 12절
- 창세기 4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