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하나님의 이름
성경은 창세기 1장 1〜2절의 장중한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제부터는 여러분들과 ‘성령’에 관한 말씀을 함께 공부할까 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성경은 창세기 1장 1〜2절의 장중한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제부터는 여러분들과 ‘성령’에 관한 말씀을 함께 공부할까 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부터 구체적으로 성령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6장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관한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던 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이사야 6장 1〜3절)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거룩’이란 단어에서 ‘영’이라는 단어로 가볼까 합니다. 구약에서 ‘영’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라는 단어를 씁니다. ‘루아흐’의 본래 뜻은 ‘바람(wind)’ 혹은 ‘숨(breath)’입니다. 신약에서 ‘영’이라는 단어로 쓰인 ‘프뉴마(πνεῦμα)’ 역시 ‘바람’이나 ‘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는 이 단어가 매우 다양하게 쓰였기 때문에 신중하게 구분하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지난 시간에 공부한 창세기 2장 7절에 등장하는 ‘생기’는 ‘느샤마(נְשָׁמָה)’라는 히브리어가 쓰였습니다. ‘루아흐(רוּח)’와 함께 이 단어도 ‘바람’이나 ‘숨’을 뜻합니다. 그런데 ‘느샤마’에는 ‘루아흐’에 없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느샤마’는 ‘나샴(נָשַׁם)’이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단어인데, 이 ‘나샴’은 ‘숨을 헐떡이다(pant)’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숨을 쉬는 게 아니라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성경에 딱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요한복음 6장 51〜53절에는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편 51편 11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기서 ‘성신’은 ‘성령’, 히브리어로는 ‘거룩의 영’이라고 합니다. ‘거룩’은 ‘코데쉬(קֹדֶשׁ)’로 ‘구별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구별하는 이유는 그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는 이 구별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유대의 위대한 왕, 다윗은 마음에 품었던 여자 하나를 얻기 위해 교묘하게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주도면밀한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을 통해 자신의 죄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직면하면서 회개의 마음으로 시편 51편을 지어 부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에는 구약에 성령이 직접적으로 쓰인 세 번의 사례 중에서 마지막 용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가 시편 51편 11절, 두 번째가 이사야 63장 10절이라면 세 번째는 그 바로 뒤인 63장 11절의 말씀입니다.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 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을 주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우리는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신약에 두 번째로 기록된 ‘성령’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에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우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겠습니다. 구원의 날,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재창조가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다시 만드셔서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성령과 우리가 하나가 됩니다.
이 하나됨을 성경은 ‘언약’이라고 불렀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과 성령의 관계는 예수님의 삶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성령께서 지배하셨던 기록들이 성경에 종종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태복음 12장 17〜21절)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가장 결정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 바로 거듭남에 대한 말씀인데,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 3절에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거듭’이란 말은 ‘위에서’라는 뜻이다. ‘위에서 나지 아니하면’ 이 위에서 난다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유전자로 다시 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성령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사도행전 2장 38절)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시는 과정은 분명합니다. 이 과정이 아니면 안타깝지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시지 못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오늘은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으로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기에 ‘이제는’이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누니(νυνί)’라는 단어인데 ‘바로 지금’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에는 성령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길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에베소서 1장 13절)다고 말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오늘은 다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계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에 불과 같은 모습으로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친수로 쓰신 율법을 주셨습니다. 언약의 두 돌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져 삶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께서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태복음 7장 15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마태복음 7장 16절)라고 명백하게 그 구별법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하고 결정적인 소망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말한 대로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14절) 부활은 죄가 해결되었다는 가장 확고한 증거물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하나님의 말씀 야고보서 4장 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그 앞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4절)는 말씀이 나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 공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것도 성령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성령님에 관한 말씀을 마지막으로 보고자 합니다. 마지막 책이자 성경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가장 많은 성경절이 인용되어 있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런 요한계시록 내에 나타난 성령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