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을 뜻하는 단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거룩’에 대해 공부해볼까 합니다. 지난번에 살펴보았듯이 히브리어로 ‘거룩’을 뜻하는 ‘코데쉬(קֹדֶשׁ)’라는 단어는 ‘구별’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구별된 존재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소위 ‘남창(男娼)’이라고 부르는 사람, 우상을 섬기던 신전에 여자 사제(창녀)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남자 사제(창남)도 있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거룩’에 대해 공부해볼까 합니다. 지난번에 살펴보았듯이 히브리어로 ‘거룩’을 뜻하는 ‘코데쉬(קֹדֶשׁ)’라는 단어는 ‘구별’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구별된 존재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소위 ‘남창(男娼)’이라고 부르는 사람, 우상을 섬기던 신전에 여자 사제(창녀)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남자 사제(창남)도 있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유대의 위대한 왕, 다윗은 마음에 품었던 여자 하나를 얻기 위해 교묘하게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주도면밀한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을 통해 자신의 죄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직면하면서 회개의 마음으로 시편 51편을 지어 부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지난 시간에 이어 다시 한 번 이사야 63장 11절을 읽습니다.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 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을 주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우리는 홍해를 가르셨던 성령 하나님의 아픈 가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우리는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신약에 두 번째로 기록된 ‘성령’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에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우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마태복음 12장 32절에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명백하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말로 거역하면 용서를 받지만 거룩의 영을 거역하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대체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강사 : 홍요한 선교사
마가복음에도 마태복음처럼 성령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그 중 하나를 찾아보면 바로 마가복음 13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나 심문을 받을 때에 우리 속에서 성령이 말씀하신다고 종종 말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겠습니다. 구원의 날,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재창조가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다시 만드셔서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성령과 우리가 하나가 됩니다.
이 하나됨을 성경은 ‘언약’이라고 불렀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요한복음 7장 37〜38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혹시 등나무나 칡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강사 : 홍요한 선교사
피터슨(John W. Peterson)이 작곡한 「불같은 성령」이라는 찬송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사야서 4장 4절을 보면 생수가 아닌 불로 나타나는 성령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여기서 이사야는 심판하는 영을 소멸하는 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가장 결정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 바로 거듭남에 대한 말씀인데,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 3절에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거듭’이란 말은 ‘위에서’라는 뜻이다. ‘위에서 나지 아니하면’ 이 위에서 난다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유전자로 다시 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에는 성령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길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에베소서 1장 13절)다고 말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경이 말하는 방언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분명히 방언은 성령의 은사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방언의 출발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에는 방언에 관해 많은 말씀들이 등장합니다.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요한계시록 14장 6절)이라는 표현에서 성경에서도 방언에 따라 나라와 민족을 나누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사도행전 10장 4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놀란 것은 할례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자마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세례(침례)도, 회개의 여부도, 신앙고백도 모른 채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나중에 이 보고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전해졌을 때 사도들과 함께 베드로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께서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태복음 7장 15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마태복음 7장 16절)라고 명백하게 그 구별법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