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유전자가 죽어버린 것
산상수훈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던 율법의 주인이 직접 오셔서 율법의 본래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산상수훈에는 예수님께서 율법의 본질을 드러내시면서 쉽게 설명하신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산상수훈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던 율법의 주인이 직접 오셔서 율법의 본래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산상수훈에는 예수님께서 율법의 본질을 드러내시면서 쉽게 설명하신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지금까지는 죄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만 다루었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죄의 실제적인 모습, 죄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5장 17절) ‘완전케 하신다’는 말씀은 헬라어로 ‘플레로오(πληρόω)’라는 동사이며 ‘가득 채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흔히 성경에서 죄를 ‘문둥병’에 비유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왜 문둥병일까요? 살이 썩어 들어가는데도 감각이 마비되어 통증을 못 느끼는 것이 문둥병의 증상입니다. 손가락이 떨어지고 발가락이 빠지는데도 몸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 그것이 죄의 무서운 특징과 닮았기 때문에 죄를 문둥병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죄로 인한 통증을 느낀다면 죄를 좀 덜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죄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오랫동안 한다 해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가 우리의 삶 전체에, 우리라는 존재 자체에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 신학자들은 인간이 전적으로 죄로 물들어 선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을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감사하게도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하여 완전히, 즉 100%로 다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사랑하지 않는 죄의 근원이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장 8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들과 딸로 창조된 인간이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 죄를 짓게 되었을까요? 죄는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강사 : 홍요한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