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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은 바로 ‘용서받은 죄인의 몫’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설명하시면서 사용하신 모세가 광야의 뱀을 든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광야에서 놋뱀을 쳐다본 자들은 일시적인 목숨을 찾았지만, 저주받은 뱀으로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쳐다본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바트(נָבַט)’인데 이 동사가 스가랴 12장 10절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이 말씀에 나오는 ‘바라보고’가 똑같이 히브리어로 ‘나바트’입니다. 그리고 이 스가랴 12장의 말씀을 요한은 요한복음 19장에서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사건에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한복음 19장 37절) ‘나바트’라는 동사가 사용된 이 말씀이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이 ‘믿음’을 ‘쳐다봄’이라고 설명하는데 적절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1장에 나타난 바라봄은 정말 죽음의 고통 속에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으로 쳐다보는 시선, 곧 죽게 된 자기를 온전히 다 맡기는 바라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어쩌면 믿음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순간 살고 싶은 마음에 쳐다봤거나 반역한 마음은 그대로 가지고서 쳐다봤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옆에서 죽었던 구원 얻은 강도 역시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 옆에 매달린 다른 강도와 함께 예수님을 원망하고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예수님의 못 박히기 위해 끌려가시던 시간, 못 박히시던 모습, 고통을 당하시는 과정 등을 보면서 잠시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했고 쳐다보았을 때 그분 속에 계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TV를 쳐다보고, 주식 현황판을 쳐다보고, 세상의 쾌락을 쳐다보고, 자신의 돈과 행복을 쳐다보고, 멋진 집과 화려한 자동차를 쳐다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해서 처참하게 매 맞고 찢겨져 돌아가신 가시관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시간은 그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짧습니다.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멀리에서, 요한 같은 제자는 십자가 바로 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들 중 그 누구도 그때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그저 안타깝게 눈물만 흘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렸던 강도는 자신의 죄를 묻고 용서하시고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밑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현장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더러운 여인이어서 감히 예수님 앞에 가까이 갈 수도 없었던 그녀는 멀리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통곡하고 가장 많이 아파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신의 죄를 십자가로 가지고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유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무덤에 마지막까지 앉아서 울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시신을 다시 제대로 싸드리기 위해서 무덤으로 가장 먼저 뛰어갔던 여인,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가장 많이 받았던 여인,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많은 용서를 받은 그 여인만이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예수님 발밑에서 한없이 울었던 여인, 주님이 돌아가신 뒤에 그 시체에 향유를 부을 수는 없었던 더러운 여인, 그래서 몰래 예수님 발밑에 들어와서 값비싼 향유를 부었던 여인, 새벽같이 무덤가에 달려가서 눈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던 여인.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면 기절해서 죽을 그 여인을 뒤로 하고 가실 수 없어서 아버지 하나님을 뵙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주님, 정녕 이것이 저의 죄의 대가라면 차라리 내려오시옵소서. 제가 올라가겠나이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울던 여인은 주님께서 고개를 떨구시던 시간에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이와 같이 거듭남은 바로 ‘용서받은 죄인의 몫’인 것입니다.
성경구절
- 스가랴 12장 10절
- 요한복음 19장 37절
- 민수기 2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