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힘
의지를 드린다는 말을 쉽게 이해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의지를 드린다는 말은 끊임없이 그분에게 내 연약한 마음을 용서하시고 새롭게 창조해 주시도록 끊임없이 내어 맡기는 것을 말한다. 기도의 연속이다. 여러분이 단 한순간에 어느 순간에 완전히 의지가 굳어지고 다시는 변하지 않는 그런 의지로 바뀌지 않는다. 여러분의 의지는 여전히 연약하다. 그래서 한 순간도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끊임없이 의지를 그분에게 드리는 것, 굴복하고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율법의 요구는 우리가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새로운 의의 본성을 성령이 움직이실 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죄 밖에 없다. 새로운 본성을 자기가 운전하려 할 때 우리는 또 실수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본성이 주어졌을 때 끊임없이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 말씀인지 모른다.
잠언 3장 5, 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것이 그리스도인 삶의 방법이고 승리의 방법이다. 우리는 죄를 넉넉히,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의지를 드렸을 때 우리를, 우리의 의지를 붙잡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이기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기려고 하면 백전백패 한다. 한 번도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없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한다.
죄를 짓지 않는 생애,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의를 행하는 생애,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생애는 우리 의지를 굳게 세워서 죄에 동의하지 않으면 죄는 짓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계속 드리지 않으면 의는 행할 수 없다. 그것을 끊임없이 성령께 맡기는, 그래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는, 성령을 좇아 행한 우리에게는 사랑이 되어지고 율법이 지켜지는 그런 삶이, 본능적인 사랑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7절에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마음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의문의 묵은 것이다. 글자를 따라서 지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영, 율법의 그 정신, 사랑의 정신, 절대적 이타심의 사랑의 정신은 절대로 행할 수 없다.
새롭게 창조해 주신, 바울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라고 하는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은 그 영이 우리 안에 창조되었을 때, 그것을 또 성령에게 맡겼을 때 그와 같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0절에는 우리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지만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로마서 8장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여기 영이란 표현은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를 말한다. 이 영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적인 성령의 호소하심으로 네 마음을, 네 의지를 내게 달라고 하시는 성령의 호소에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맡기고 굴복할 때에 주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이 생명이라는 단어와, 삶이라는 인생이라는 단어의 우리말은 그것을 구별하고 있지만 영어는 같다. ‘life’라고 하면 생명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도 life 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분의 사랑의 본성이 우리 안에 주어지고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 사랑의 본성을 운전하셔서 절대적, 본능적 사랑이 되게 하시고, 본능적인 용서가 되게 하실 때, 율법이 본능적으로 지켜지게 하실 때, 그것이 계속되는 과정을 생명,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의 삶이다. 이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삶이다.
이 죄와의 투쟁은 계속해서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그 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거듭난 이후의 삶과 이전과의 차이점은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하시므로 이제 그가 죄를 이길 거룩한 능력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죄를 넉넉히 정복할 힘이 그의 힘이 아닌 성령의 힘이 그의 안에 머물러 계신다는 사실이다.
성령이 임하심
바울은 계속해서 로마서 8장 15절에 우리가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 마귀의 영, 우리를 종처럼 부리는, 죄의 종으로 부리던, 그 두려움의 영을 이제는 더 이상 받지 않고 양자의 영,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영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아빠라고 부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율법의 노예, 정확하게 말하면 율법의 노예가 아니라 죄와 마귀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다. 그것은 율법의 노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단이 만든 말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노예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율법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 가서 죄의 용서를 받고 율법, 나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받으라고, 나를 지키면 너는 영생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의 노예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그렇게 썩 잘하고 있는 표현이 아니다. 죄의 노예일 뿐이다. 사단의 노예일 뿐이다. 사단은 우리가 잘못하면 계속 율법을 가지고, 그 선한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협박하고 공갈하고 죽인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그 율법의 모든 저주를 이미 십자가에서 당하시고 해결하신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영원히 해방하셨다.
갈라디아 3장 13절에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더 이상 율법의 저주 아래, 아니 마귀가 내리는 저주 아래 있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피하여 숨어 들어오길 바란다. 그 속에, 용서의 사랑의 그 품에 여러분 자신을 믿음으로 맡기기를 바란다.
그 때에 성령이, 아버지의 영, 양자의 영이 우리에게 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친절한 표현이다. 아버지 보다는 그 때 그 당시에 아빠라는 말을 쓴 것 같다. 세계적인 공통어 아빠라는 말은 아주 친절한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아들의 그 아버지에 대한 이름이 아빠다. 아무 간격이 없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로 우리가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더불어 우리에게 오신 성령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면서 로마서 8장 16절에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도록 만들어 준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더불어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성령의 정말 놀라운 확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속자라는 사실, 영원한 생명과 우리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라는 이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가!
의의 선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도 아니고 우리가 완전해서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놓으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고 네 것이라고 넘겨주신 은혜의 사랑의 그 선물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라고 넉넉히 그렇게 부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선물은 받을까 말까 하는 것이 아니다. 받을까 말까 하면 선물이 아니다. 선물을 주실 때는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아야 된다. 그리고 네 것이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네 것으로 확실히 가져라. 이제부터 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받을까 말까 이것이 내 것인가 아닌가, 자꾸 의심하는 것이다. 아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의 행위 때문에 아니고 우리의 믿음 때문에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의의 선물이 우리에게 거저 주어졌고 그래서 우리가 그 선물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그 영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렇게 말할 수 있게 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8장 33, 34절에 얼마나 확신 있게, 놀랍게 외쳤는가! 참 감동적인 말씀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심판장은 하나님이시다. 마귀가 심판장인가? 하나님이 심판장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아들의 죽으심을 받아들이시고 당신의 아들이 사신 삶을 우리의 것으로 채워주시고 너는 의인이라고 하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언제든지 우리가 혹 실수하고 잘못했을 지라도 요한일서 2장 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가 그분에게 나아갈 때 그분께서 우리를 다시 한 번 정결케 하시고 다시 당신의 아들과 딸로 우리를 안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이 놀라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확신,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바울은 놀랍게 외쳤다. 이 믿음의 놀라운 확신 오늘 우리가 누리고 영원히 붙잡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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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잠언 3장 5,6절
- 로마서 8장 7절
- 로마서 7장 6절
- 로마서 8장 10절
- 로마서 8장 15절
- 갈라디아서 3장 13절
- 로마서 8장 16절
- 로마서 8장 33,34절
- 요한일서 2장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