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칭의와 율법에 관한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상당히 의미가 있는 말씀이다. 로마서 3장 31절,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우리가 지난 시간에 공부하면서 정리했던 말씀들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선 ‘믿음’이라는 단어는 본래 ‘맡긴다’는 뜻이라고 했다. 어떤 지적인 동의와 더불어서 맡기는 행위가 믿음이다. 이 지적인 동의에 그치는 믿음은 야고보서 2장 19절에 마귀도 믿고 떤다는 말씀을 한 것처럼 믿음은 어떤 지적인 동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자기를 맡기는 행동까지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맡기지 아니할 때 믿음은 사실상 효력이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들은 다 똑같이 죄인이나 병든 사람이 완전히 자기를 맡겼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치료하시는 과정 중에 하셨던 말씀이다.
‘의’라는 단어는 신명기 6장 5절에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는 것이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율법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문제에 관해서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했던 말씀을 이제 좀 더 구체화해서 특별히 구약에 나타난 아브라함과 다윗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는지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두드러지게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타난다. 그 말을 히브리말로 그대로 직역하면 ‘아브라함이 여호와 속에 맡기도록 했다’이다. ‘믿는다’는 본래 말은 히브리어 ‘아만’이라는 동사의 사역형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신을 든든하게 되도록, 견고하게 되도록 맡겼다고 할 때는 그 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은혜의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그 수고에 대한 대가를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비록 그가 자기 아내를 애굽의 바로에게 넘기는 실수를 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과 관계없이 자기에게 의지하는 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약속, 은혜의 약속을 하신다. 그 은혜의 약속을 받은 이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자기를 완전히 내어 맡기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여기 특별히 흥미 있는 것은 ‘여호와 속에’라는 말이 우리말은 그냥 ‘여호와를’이라고 되어 있지만 본래 말은 ‘속’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영어도 번역할 때는 ‘believe in Yahwe’라는 말을 뒤에다가 붙인다. 이렇게 ‘in’이라는 전치사가 붙여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하나 됨, 하나님의 가슴속에 자기를 내어 맡기는 그런 믿음의 행동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전폭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이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셨다. 혹은 칭하셨다. 히브리말은 ‘하샤브’라는 말인데 그것은 ‘count’ ‘그렇게 인정했다’ ‘그렇게 계산해 주셨다’는 그런 표현이다.
믿음으로 굳게 세워진 율법
우리가 로마서 3장 31절에서 바울이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배경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여기 분명히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의이다. 이 의라는 것은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결과인 것이다. 믿음이 율법을 폐한다는 말은 정말로 맞지 않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한 아브라함에게 의, 곧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킨 이 결과를 넘겨주셨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율법을 다 지킨 열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율법을 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이루신 율법의 그 열매들을, 그 결과들을 마치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킨 것처럼 넘겨주시며 의롭다 하시는 것이므로 율법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굳게 세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그 율법을 결코 지킬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지키신 율법의 결과를, 우리가 그분에게 자신을 맡길 때, 그 율법이 다 이루어진 그 결과 곧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은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율법을 오히려 굳게 세우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율법은 결국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본성, 즉 율법이 지켜지는 본성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로 지키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 율법의 의를 이루어서 우리에게 다시 넘겨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실체인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율법이 더 굳게 세워진다는 사실은 놀라운 성경적인 진리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의 결과, 의를 우리에게 거저 주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율법은 내가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며 마치 율법은 없어져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시는 이들이 있다.
또 하나는 율법은 ‘우리를 계속해서 정죄하기 때문에 율법이란 참으로 우리에게 정말 성가신 존재다. 그래서 율법은 없어져도 된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다’는 정말 성경의 진리와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믿음으로 얻은 의라는 단어는 모든 율법을 다 지킨 행위의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다. 예수님이 다 이루신 율법의 행위를 우리가 받는 것이다. 율법이 어디 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율법이 바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이 없으면 우리가 갈 수 없다. 바로 그 길이 율법이다. 그런데 그 길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인 것이 분명하다.
용서받은 다윗
이제 우리가 로마서 4장 1~8절 말씀가운데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사람이 의를 얻을 수 있는가, 율법을 다 지킨 결과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데, ‘오직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두 번째 사람은 바로 다윗이다. 다윗이 시편 32편 1, 2절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한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큰 범죄를 한 다음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서 불렀던 노래이다. 여기 우리말로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헬라어는 ‘행복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행복, 하나님의 기쁨 그것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이다. 그 행복이 우리에게 전달되어서 우리도 용서받은 사람으로 행복한 것이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얘기는, 다윗은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왕이었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죄의 유혹에 빠져서 육신을 따라 행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성령 거역 죄
때때로 어떤 이들이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고도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실수하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은혜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용서받도록 호소하는 성령을 거역하는 일 외에는 용서 받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 간절히 호소하시는 성령을 거역할 때는 용서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이 소위 성령거역 죄이다. 용서를 뿌리치는 일 외에는 용서받지 못할 어떤 죄도 없는 것이다.
이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새로운 눈을 열어 보여준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믿기만 하면 이제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믿는다’라는 말은 ‘맡기는 행동’, 행위이다. 헬라어가 현재형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마찬가지로 “저를 믿는 자마다”이다. 저를 ‘믿었던 자마다,’ 혹은 ‘믿을 자마다’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믿는 자마다’이다. 그 ‘믿는다’는 말은 계속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맡기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맡겼다가 다시 찾아오고 또 내 마음대로 살다 다시 맡기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맡기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다. 자기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을 로마서 6장에 가면 순종, 자신을 드리는 순종이라고 표현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 결과가 영생이다.
바울이 다윗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용서받은 기쁨, 용서받은 자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 용서받은 자들의 용서받은 일에 관한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무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분명히 이 세상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사장이라는 것은 죄인들을 위해서 중보하는 직분이다. 곧 온 세상의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소개하고, 어린양의 희생을 소개하고, 그 용서와 사랑을 전달해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구하는, 그래서 용서받은 기쁨이 온 땅에 충만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신 것이다. 이스라엘만 구원하려고 택하신 것이 아니다.
키워드 : 로마서, 칭의, 율법, 믿음, 의, 아브라함, 다윗
성경구절
- 로마서 3장 31절
- 야고보서 2장 19절
- 신명기 6장 5절
- 로마서 3장
- 로서서 4장
- 창세기 15장 6절
- 로마서 3장 31절
- 로마서 4장 1~8절
- 시편 32편 1,2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로마서 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