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
호세아 6장 7절을 보면,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맺은 언약, 이것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아담은 아들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족보의 끝은 누가복음 3장 38절에 끝에 가면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그 이상은’이라는 말은 ‘그 아버지는’이다. 어떤 영어 번역에 보면 실제로 ‘his father, his father’라고 번역해 놓았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마지막 아버지’이다. 개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족보 있는 개를 가지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족보의 조상을 따라 올라가면 최초의 조상이 개다. 그런데 사람 족보는 계속 올라가면 아담이 나오고 그 다음에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담의 아버지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다.
십자가 공부할 때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 이것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로마서 2장 15절, “마음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마음에 기록되어 있는 이 법을 ‘양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양심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본성 속에,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사랑의 법, 이것을 예수님이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을, 말씀을 걸고 있다. 그 위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이 사랑이라는 법이 우리 마음에 본래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그 사랑의 동기, 정신에 의해서 남의 것을 가져오는, 도적질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내 것을 다 갖다 주게 되는 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본능적인 사랑의 그 본성이 죽어버린 것이 우리가 죄를 지은 결과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 “범죄 한 날에 죽으리라”했던 죽음의 대상이 무엇인가? 사랑의 법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의 것을 가져오지 않는 도적질은 안 할 수 있다. 남의 것을 가져오는 도적질은 안 할 수 있지만, 우리 속에 있던 사랑의 본성, 내 것을 안 갖다 주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본능은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을 범하면 지옥에 간다고 자꾸 그러니까 지옥에 가지 않고 싶어서, 무서워서 도적질도 안하고 거짓말도 안하고 간음도 안 할 수 있다.
로마서 8장 7절의 말씀대로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은 이 본성적인, 본능적인 사랑의 법을 못 지킨다는 표현이다. 생각으로 안 되는 것이다. 본능적인 사랑의 생각이 안 되는 것이다. 그냥 지옥 갈까봐 무서워서 나쁜 짓을 안 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옥가고 영원히 멸망하고 싶지 않으니까 의무적으로 부모를 공경한다.
타락과 함께 나타난 죄의 본성
그 다음에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기가 그렇게 부모에게 효도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나님 앞에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그러니까 내가 복 받고 내가 장수하기 위해서 부모를 공경한다. 진심으로 부모를 사랑해서 부모를 사랑으로 공경하는 게 아니고 내가 복 받고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장수하기 위해서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리 죄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이 언약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자꾸 반복한다. 이 본능적으로 사랑이 되어지는 본성을 말한다. 영어로는 ‘natural love’라고 표현한다. 아주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사랑, 이것이 타락과 함께 죽은 것이다. 우리 속에 그 죄의 본성이, 이기심, 자기 사랑의 본성이, 하나님과 이웃을 본능적으로 안 주고는 못 견디는 그 본능적 사랑의 본성을 이기심의 본성이 죽여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것이다. 즉 로마서 3장 20절에 율법의 행위로,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하는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율법을 지킨다.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을 하시는 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말이 맞지만 사실은 우리 육신의 본성으로는 절대로 불가능 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우리에게 말하는 요구가 본능적인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이야기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빗나가는 것을 죄라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마음이 빗나간다고 말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다른 사람 못 줘서 한이고 다 줘야만 행복한데 우리는 자꾸 인색하게 움츠러들고 주다가도 손을 멈추고 내 것 챙기고, 그러니까 아버지 마음과 우리 마음이 너무 다른 것이다. 안주고는 못 견디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우리는 우리가 행여라도 내 것 뺏길까봐 적당히 그저 시늉만하고 그런 본능적인 이기심은 이 본능적인 사랑의 우리 아버지의 마음하고 빗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죄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는 그 똑같은 마음으로 아버지 마음의 법이나 우리 마음의 법이 하나가 되었다,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것을 ‘언약’이라고 한다. 히브리어의 ‘브리트(ברית)’라는 명사이다.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영어로 말하면 ‘oneness’ ‘하나 됨’이다. 이 언약이 깨트려졌다.
아들이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맡겨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게 해 드리지 아니하고 이 아들이 마귀의 말에 자기 마음을 다 바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 사랑의 법은 완전히 깨어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마귀의 이기심, 자기 사랑의 법이, 우리 안에 그런 유전자가 생겨났다.
그래서 예수님이 슬피 이야기를 하시면서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아버지가 바뀌었다. 너의 아버지가 마귀다. 우리가 왜 마귀 자식입니까? 물으니까 마귀 자식이라는 증거가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이기적이게 살 수 밖에 없다.
이기심을, 자기 사랑의 죄의 법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런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종교 지도자들이다. 나와 같은 목사들이다. 겉으로는 아주 친절하고 아주 예의 바르고 아주 사랑스럽게 보이지만, 우리 속 안에 욕심과 이기심과 교만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욕심을 부리지만, 부자는 부자의 욕심 차리는 방법이 다르다. 배우지 못한, 정말 학교 문턱에 가 보지 못하신 분들은 그런 방법으로 자기 수준에서 그렇게 죄를 짓지만, 적어도 대학원을 나오고, 혹은 학위를 가졌다, 어떤 위치에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 많이 배운 지식과 자기 머리를 이용해서 아주 고단수로 죄를 짓는 것이다. 똑같다.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상관없이 여전히 똑같은 종류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자기 사랑의 법에 의해서.
이러한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깨트린 그 상황을, 약속을 깨트렸기 때문에 ‘불의하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끝까지 언약을 지키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중에 요한계시록에 가면 이 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공부한다.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때, 온 우주와 천사들이 하나님이 의로우시다 고 말한다. 왜 의롭다는 말을 하는지 나중에 보겠다. 하나님은 끝까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신다.
성경구절
- 호세아 6장 7절
- 누가복음 3장 38절
- 로마서 2장 15절
- 마태복음 22장 37~40절
- 창세기 2장 17절
- 로마서 8장 7절
- 로마서 3장 20절
- 요한복음 8장 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