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의 거룩

by blogstar posted Jan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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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구별된다는 것

히브리말에 ‘코데쉬’ ‘성’이라고 하는 단어, 이 단어의 뜻은 지난시간에 우리 살펴보았듯이 ‘거룩’이다. ‘구별’이다. 이 단어의 여러 파생어들을 살펴보면 그중에 하나가 ‘카데쉬’라는 단어다. 우리말에, 성경에 가끔 나온다. 소위 남창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 창남, 여자 중 에 창녀가 있다면 남자 중에는 소위 ‘창남’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로서 몸을 파는 사람을 말할 수 있는 단어로 혹은 미동, 아름다운 아이다. 이것도 그런 표현이다. 옛날 과거에 이방의 우상을 섬기던 신전 안에는 여자 제사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 제사장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한 마디로 남창, 뭐라고 표현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성녀’가 아니라 ‘성남’이다. 구별된 남자이다. 마귀에게 자기를 구별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사단에게 자기 몸을 바쳤다. 그래서 사단의 예배의 제사장으로서 오는 여자 손님들, 여자 예배 자들에게 자기 몸을 바쳤다. 마귀를 대신해서이다.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입에 담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다.

그 다음 이 단어의 소위 여성 형 명사가 있다. ‘크데샤’라는 단어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녀’이다. ‘창녀’는 성경의 ‘음녀’라는 단어와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음녀는 음행하는 여자로 알지만 음녀는 남편을 두고 그런 간음을 하는 여자들이다. 하지만 이 창녀는 아니다. ‘크데샤’, 창녀는 마귀에게 자기 몸을 바친 여자이다. 굳이 한자로 말하면 ‘성녀’이다. 자신을 마귀에게 구별한 구별된 여자이다. 이방신전에 이런 여자들이 있었다. 이것은 창세기 10장에 보면 고대 바벨론의 건설 자가 니므롯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니므롯의 부인이었던 세미라미스라는 여자가,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중동지방에는 잘 알려져 있는 여자이다. 세미라미스 이 여자는 아주 음녀이다. 자기 남편 니므롯을 죽였다고 전설에는 나온다. 그리고 왕권을 잡는다. 이 여자가 소위 많은 뭇 남자들, 억센 남자들을 사로잡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 소위 여자 제사장제도이다. 이것이 소위 ‘창녀’라고 불리는 ‘크데샤’들이다, ‘성녀’이다. 구별된 마귀에게 몸을 바친 여자들이다.

사단이 세상을 다스릴 때 왕들을 손아귀에 넣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여자제사장들을 통해서 이었다. 소위 공창제도라고 말한다. 공공연한 창녀제도이다. 공창제도는 오랫동안 이방종교에 그대로 내려왔다. 나중에 그리스의 종교들도 다 이런 공창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사단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방법은 이런 성적인 타락을 공공연하게 부추기는 방법을 통해서이었다.

그들이 신전에 갈 때는 그들의 신들에게 바칠 짐승을 데리고 가서 거기서 죽여서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심지어는 우리가 말하는 소위 말하는 환각제들, 대마초를 비롯해서 그 당시에 그런 독초들을 피우고 환각상태에서 이런 공창들과 더불어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 예배의 행위였다. 사단에게 몸을 바치는 것이다. 그때 마귀가 사용한 존재들이 창녀들이다. 크데샤, 성녀이다. 히브리말을 그대로 읽으면 창녀가 아니고 성녀이다. 거룩한 여자이다.

창녀를 보고 어떻게 거룩한 여자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사단에게 완전히 몸을 바친 여자들이었다. ‘거룩’이라는 본래 뜻이 깨끗하다 순결하다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구별하여 바쳤다’는 뜻이다. 히브리제도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지 않았다. 이방종교는 여자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히브리 종교에는 오직 남자들이 제사장이다.

하나님께 몸을 바친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머리에 쓴 관에 ‘여호와께 거룩’이라고 썼다. 한자로 ‘성결(聖潔)’, 여호와께 성결, 영어로는 ‘Holiness to the Lord’ ‘하나님께 거룩’ ‘코데쉬’라는 히브리말이다. 거룩이다. 구별하여, 하나님께 자기를 구별하여 바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번 제사장이 되면 그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죽을 때 까지 제사장이다. 자기 몸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린 것이다. 자기 삶을 드린 것이다.

제사장은 사실은 죽을 때까지 제사장이기 때문에 딴 짓을 할 수가 없다. 이미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가 거룩이라는 단어를 잘못 오해해서 깨끗하다고 표현하면 그것은 사실은 원래 말하고 거의 맞지 않는 소리다. 깨끗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더러운 창녀를 어떻게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구별되심

한 가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을 거룩하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구별되심이다. 하나님의 구별되심은 첫째로 창조주로서 그가 구별되신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에 있는 어떤 것도 하나님과 다르다. 오직 한분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신, 만물을 창조하신 분과 이 우주에 있는 어떤 존재와도 다르다. 구별된다. 구별되어 계신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 도덕적 거룩이다. 소위 도덕성에 있어서 죄와 전혀 구별되신 분이다. 특별히 우리 죄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말씀을 할 때, 이 죄와 구별되셨다는 사실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세 번째, 정말 중요한 거룩이라는 의미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구별하여 바치신 분이라는 뜻에서 거룩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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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19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드렸던 마지막 기도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신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기에 보면 주님께서 ‘내가 나를 저희를 위하여 구별한다’고 말씀하신다. 거룩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이 ‘내가 나를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그분이 도덕적으로 죄가 많아서 몸을 씻고, 마음을 씻고 이제 제물로서 나를 바친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는 이미 이 땅에 오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그는 거룩한 자라고 불리었다. 누가복음 1장 35절 말씀을 보면 천사가 예수님을 육신으로 낳아주었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런 말씀을 한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이미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구별하신 분이다.

구별의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이미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다. 특별한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를 몸을 바치셨던, 구별하여 자기를 바치셨던 그분이 다시 십자가 앞에서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고 말씀할 때는 여기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구별하오니’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 똑같은 구조로 된 말씀이 에베소서 5장 25절에 기록되어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에베소 5장 25절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나를 거룩하게 하신다고 요한복음 17장 19절에서 말씀하시지만 에베소 5장 25절에는 그것을 ‘자신을 주신다’고 표현했다. 마치 남편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고 오직 사랑하는 아내에게만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셨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여기 거룩하다고 하는 표현은 신랑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를 구별해서 아내에게 자기를 바치는 일을 성경은 거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거룩은 결코 깨끗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통째로 바치는 남편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이야기는 동일한 이야기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던 예수님은 다른 모든 일을 다 버리고, 지금까지 하시던 모든 일을 그만두시고 우리를 위한 죄의 제물로 자기를 온전히 우리를 위하여 구별하여 바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것을 성경은 거룩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구절

  • 창세기 10장
  • 요한복음 17장 19절
  • 누가복음 1장 35절
  • 에베소서 5장 25절
  • 요한복음 17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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