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나님과 하나 되는 믿음

by blogmaster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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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고 하나 되는 것

이사야 55장 10, 11절 말씀,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반드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 모든 약속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에 의해서 그 뜻을 이루고 열매를 맺히고 그 열매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 그것을 우리가 의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시간에 창세기 15장 6절의 말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하신 그 말씀의 배경이라고 말씀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 그 말씀에 자신을 맡겼다. 하나님의 궤도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함께 도는 것이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삯군의 믿음과 다르다. 11시에 온 사람에게 주신 은혜는 일에 관계없이 주인이 주고 싶어서 준 것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은 돈을 바라고 일한 것이다. 주인이 주는 임금에 대해서 일을 안 시키고 내버려 둘 수도 있다. 얼마를 주든지 그것도 주인이 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대가로 지불되는 것은 사실은 근원적으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살았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의를 행했기 때문에 내 의의 행동을 보시고 그것을 공로로 취급해서 대가를 주십시오, 내가 이 만큼 믿었으니까 구원을 주십시오. 거듭 말씀드리지만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 믿음은 조건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구원의 근거가 되는 공로의 조건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는 손에 불과한 것이다. 

이 삯군의 믿음은 계속해서 그렇게 말한다. 내가 잘 믿었으니까 하나님, 내게 용서를 주시고 은혜를 주십시오, 내가 금식기도 했으니까, 내가 이런, 이런 믿음을 보였으니까 당연히 내놓으셔야 됩니다. 그것은 결코 아니다. 은혜와 구원은, 공로는 예수님이 만들어서 그분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될 존재들이다. 그런 것을 바랄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잘 믿어서 믿음이라는 물건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구원이나 은혜를, 의를 받는다면 그것은 완전히 성경과 다른 이야기이다. 

이사야 53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사건을 말하면서 그런 표현을 했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기 ‘뜻(헤페츠)’이라는 히브리 말은 ‘기쁨’을 가리키는 특수한 말이다. 이 여호와의 기쁘신 뜻을 이룬다고 말씀할 때에 여호와의 기쁘신 뜻은 우리의 구원이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기쁨’이다. 여호와의 기쁨은 우리의 구원이다. 

실제로 이사야 53장 10절에 나타난 ‘기쁨’이라는 똑같은 말씀이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바쳐 희생하시겠다고 서원을, 자기를 바치시는 세례(침례)식 때, 마태복음 3장 17절“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의 같은 기쁨이다.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를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을 때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계속해서 이사야 53장 11절을 보면 예수님의 자기를 하나님께 바치셨던 믿음, 그 믿음의 결과가 나와 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다. 그 기쁨이 무엇인가? 그 이어지는 말씀에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여기에 ‘자기 지식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 ‘지식’은 머리의 지식이 아니다. 히브리말로 하나님과 동침하는 것,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본인이 받아들이고 그 뜻에 하나 되는 것이다. 

의롭게 되는 것은

그것은 우리 죄인의 구원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자기 몸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긴,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이다. 자기를 믿음으로 맡겼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과 한 덩어리가 된다. 그것이 지식이라는 말의 근원적인 의미이다. 나의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의 싸이클에 동참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 대구에서 탈수 있고 대전에서도 탈수 있고 수원에서도 탈 수 있다. 그런데 결국은 똑같이 서울에 도착한다. 그 의의 열차, 그 라인에 언제든지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 그것은 아들과 하나가 되는 하나 됨의 지식이다. 곧 아버지의 소원이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쳐졌다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아는’이라는 말이 똑같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광, 자기를 희생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자기 아들마저도 희생시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의 영광의 하나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안다’는 표현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안다’는 말은 ‘하나 된다’는 말이다. 그 ‘안다’는 말을 신약성경에는 ‘영생’이라고 말했고 요한복음 17장 3절, 똑같이 영생 얻는 이야기를 ‘안다’고 표현했다. ‘아는 것이 영생이라’, 같은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안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이 요한복음 6장 54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하나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먹고 마시는 것, 마시는 자마다 영생을 얻었고 똑같은 말이다. 

이때는 ‘먹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 다시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안다’는 말이고 ‘동침한다’는 말이고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을 이성적이고 머리로 깨달은 것도 믿음으로 안다,  그것은 지적인 확신이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개인적인 어떤 인정이나 확신이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한 부분일 뿐이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믿음은 우리의 죄 된 자아를 우리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어도 똑같다. 예를 들어서 귤을 좋아해서 귤만 계속 먹는 사람은 나중에 피부색이 귤색으로 변한다. 내가 귤을 먹었는데 귤에게 먹힌 것이다. 내가 귤을 먹은 것이 아니다. 귤이 나를 먹은 것이다. 술 좋아하는 분들이 처음에는 술을 마시다가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 사람이 술이 되어버린다. 술에 삼켜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면 나중에 우리의 살이, 우리의 피가 예수님의 살이 되고 피가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서 피가 돌고 그분의 근육이 움직인다. 그것을 다른 말로 ‘아는 것’, ‘하나 되는 것’, ‘동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믿는 것’이다. 이 믿는다는 말은 완전히 그 존재에게 나를 맡겨서 한 덩어리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믿음에 대한 생생한 요한의 묘사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 아닌 머리로 인정하는 믿음을 사단이 가르쳐 온 것이다. ‘신앙고백’이라는 것이 믿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신앙고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신앙고백’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을 여러분과 내가 다 소유하기를 바란다.

성경구절

  • 이사야 55장 10절로 11절
  • 창세기 15장 6절
  • 이사야 53장 10절
  • 마태복음 3장 17절
  • 이사야 53장 11절
  • 고린도후서 4장 6절
  • 요한복음 17장 3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요한복음 6장 5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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