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사랑의 출구

by blogmaste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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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이제 죄를 정리하면서 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죄는 분명히 여러 차례 말했듯이 사랑을 배신한 것이다. 사랑을 거절하고 짓밟은 것, 사랑하지 않는 것, 사랑이 되어 지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랑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첫 째는 십계명이고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십자가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단이라는 말은 다를 ‘이(異)’ 자에다 끝 ‘단(端)’ 자이다. 아주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잘못됐다. 흔히 그런 한자로 표기하면 그렇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기독교의 이단은 이 두 가지를 변경시킬 때가 이단이다. 

하나님의 십계명 그것은 분명히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리고 가는 후견인이다(갈 4:1,2). 몽학 선생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옛날 헬라시대 때에 집에서 아주 신뢰 받는 종이다. 종중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아이를 보호하는 종이다.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 선생,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는 인도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고 갈라디아서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율법이 아니면 죄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십계명에 대한 공부를 잠깐 했지만 이 십계명은 그 하나하나의 계명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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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드렸지만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 마음의 사랑의 동기가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고 건강하고 영원히 살기를, 죽지 않기를 원하셔서 주신 것이 계명이다. 그래서 계명 속에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다. 마치 엄마가,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것 하라 이것 하지마라 그렇게 말 할 때 그 말 속에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이름 하여 성경에는 여러 가지 말로 표현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언약이라는 단어, 또 그 언약이라는 단어에 밖으로 나타난 증거, 증거라는 말은 증명한다는 증거가 아니고 말한다는 증거이다. ‘testimony’이다. 

어쨌든 그 언약의 관계, 부모와 자식 간에 맺어진 관계로서 그 부모가 자식에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으로의 말씀이다. 그래서 율법이라고 말한 이 십계명을 출애굽기 34장 28절에 보면 언약의 말씀, 언약의 열 말씀이라고 우리말은 그렇게 번역했다.

언약이라는 말은 본래 뜻이 이스라엘말로 ‘브릿트’라는 말인데 뜻은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언약의 열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덩어리가 되는 언약은 바로 사랑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사랑이라는 물건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 사랑의 끈으로 묶여진 것이다.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끈으로 묶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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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묶어 놓은 사랑의 끈이 율법이다. 십계명이다. 그래서 첫 번째 계명부터 아주 명백한 사랑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그 말은 나는 너만 사랑한다는 표현이다.

계속되는 말씀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불행하기를 원치 않는다. 네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네가 죽지 않기를 원한다. 간음하면 네가 고통을 당한다. 살인하면 넌 너무 힘들어진다. 그리고 네가 죽어야 된다. 그러니까 절대로 죽지 마라, 그렇게 하면 불행해진다. 행복해야 된다. 너는 반드시 살아야 된다. 그 말씀이 십계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안 들으면 죽이겠다는 공갈 협박 위협으로 알아듣고 있다. 아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로, 부부 관계로 혹은 부모와 자식 관계로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 사랑의 언약의 말씀이다. 죄가 이 사랑을 배신하고 짓밟은 것이다.

내가 앞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는 이유가 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율법이나 계명은 아주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고 나서,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믿고 나서 이제는 율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로마서 3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사랑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느니라. 파괴된 사랑의 관계, 파괴된 사랑의 언약의 관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다 용서하고 해결한 다음에 그 본래의 상태로, 사랑의 언약으로 더욱 굳게 맺어진다는 말이다.

다시 이야기한다. 율법이라는 단어는 사랑의 언약의 말씀들이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법조문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의 언약의 끈인 것이다. 우리가 다리가 부러지면 어떻게 하는가? 기브스하고 그 부러진 자리가 더 단단해진다.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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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 우리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시는 사랑의 관계로, 다시 더 굳어지는 사랑의 관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굳게 더욱 굳게 세우느니라.”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 사랑의 통로이다.

내 주변에서도 가끔 간음을 하고 바람을 피우는 이들이 부인을 둘 데리고 살면 좋을 줄 알고 살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고 늙어지면서 그 결과를 쓰디쓴 결과를 맛보고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너무나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야 한다. 너무 아픈 이야기이다.

간음을 해서 부인을 둘 셋 두고 살면 더 좋을 것 같았으면, 우리가 행복했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둘이 아니라 열이라도 주실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불행의 아픈 상처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항상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자기 존재를 다 줄 때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했다. 다 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절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나누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직 그 존재에게만 자기를 다 쏟아 붓는 것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이 세 분이서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사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10절“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100% 자신들을 주시는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사시는 우리 아버지, 소위 삼위 세 하나님이 서로들에게 자신을 완전히 주셔서 하나가 된 그 존재를 우리가 하나님, 하나 되신, 사랑으로 하나 되신 님 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이다.

이 사랑의 하나님, 하나 되신 하나님이 한 사람 아담에게, 사랑으로 하나 되신 하나님이 한 사람 아담, 그 아담 속에 남자와 여자가 들어 있었다. 잠시 분리 시켰다가 자식을 통해서 다시 하나를 만드신다. 그 하나님이 한 목소리로 우리의 인간의 행복, 우리 자식들의 행복을 간절히 원하셔서 이 율법을 주신 것이다.

엄마 아빠가 똑같은 목소리로 “얘야, 그 나쁜 과자 먹지 말고 이 좋은 밥 먹어라” 아빠도 엄마도 똑같이 사랑하는 아들의 건강과 행복을 원하기 때문에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것이 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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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란 단어를 일반적으로 그것을 굉장히 어렵고 딱딱하고 죄인을 잡아서 심판하려는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도록 마귀가 만들고 있다. 결코 마귀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길 바란다. 율법은 우리 아버지의 아름다운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소리이다.

두 번째로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이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을 반복해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죄인 되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우리는 사단의 유전자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래서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미 죄인이 되어 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 아버지, 우리 모두의 죄를 이미 지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가능성이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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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한다. 디모데전서 2장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장 9절 다시 반복한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그래서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참고 기다리신다”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과 십자가와 십계명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 여러분, 이 사랑을 우리가 우리 가슴에 고이 간직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키워드 : 사랑, 율법, 십계명, 십자가, 이단, 후견인, 몽학선생, 언약, 증거, 용서 

성경구절

  • 갈라디아서 4장 1절로 2절
  • 출애굽기 34장 28절
  • 로마서 3장 31절
  • 요한복음 14장 10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디모데전서 2장 4절
  • 베드로후서 3장 8절로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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