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저주,심판의 상징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당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추시면서 우리 스스로가 죽을 수도 없고 부활할 수도 없기에 당신이 우리 죄를 다 뒤집어쓰시고 안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엄밀하게 말하면, 다시 죽고 부활하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우리대신 돌아가시고 우리대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 속에서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야기를 다 끝내시면서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3장 14, 15절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죽어야 하리니, 십자가에 들려서 돌아가셔야만 하리니 이는, ‘이는’이라는 말은 우리말의 ‘이유는’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이유가 뭐냐? 왜 내가 죽어야만 하느냐? “이유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하려 함이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생명은 그분 안에 있다. 그분이 사셔서, 그분이 부활하셔서 우리도 부활할 수 있고 거듭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 “하나님이...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나타난 이 복음을 우리가 흔히 대속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대신 갚아주신 복음, 대신 죽어주신 복음, 대신 영원한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얻으시고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민수기 21장 8, 9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너무 지나치게 원망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신다. 생긴 것도 붉은색으로 불같아서 불 뱀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맹독을 가진 뱀이다. 물리면 얼마 있지 않아 죽는다.
불 뱀에 물린 자들이 희망 없이 죽어 가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이 불 뱀을 보내셨다.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들은 죽어가야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의 아주 잔혹한 모습, 그들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자신들의 죄의 실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불 뱀을 보내신 것이다.
그 불 뱀의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던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신다. 민수기 21장 8절에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 ‘불 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실제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뱀’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냥 ‘불’만 있다. 히브리어로 ‘세라프’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불 자체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불에 지글지글 타고 있는 뱀의 모습을 구리로 그렇게 만들어서 달라는 이야기다. 실제 그 말씀 그대로를 인용한다면 불에 타서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하고 온몸을 다 뒤틀면서 불덩어리가 되는 그런 뱀의 모습이다.
성경의 불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나타냈다.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심으로 죄를 태우시고 죄를 영원히 없애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이 뱀을 저주하고 심판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들의 반역과 그들의 죄를 태워서 없애시겠다는 표현이다. 저주의, 심판의 상징이다. 이 불 뱀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나무에 매달리신다.
인자의 의미
“인자가 들려야 하리니” 여기서 분명히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인자라고 부르고 계신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을 주님께서 쓰실 때는,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곧 죄인의 종이 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한다. 두 번째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죄인의 대속물이다. 죄인 대신 돌아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인자라는 말의 의미이다. 사람의 아들.
왜 그가 사람의 아들이 되셨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그가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고 죄인의 종이 되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죄인대신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으시는, 심판의 대속물, 저주의 대속물이 되기 위함이었다. 그가 죄가 있어서 심판과 저주를 받으신 것이 아니다. 대속물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따라가 보면 저주받은, 정말로 죄가 되어서 없어지는 이 불타는 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나타내고 계신 것이다.
대속물
이 불타는 뱀의 모습을 시편 22편 가운데서 볼 수 있다. 시편 22편은 1절부터 바로 예수님의 노래이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을 앉혀놓고 가르친 이야기 가운데 그 말씀이 나온다.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다윗은 그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가운데서 사무엘하 23장 1, 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유언이라. 그리고 그는 솔직하게 고백을 한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다윗의 노래는 다윗이 솔직하게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신이, 성령께서 그를 감동하셔서 자기 노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 하나님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시편 22편은 아주 대표적으로 아주 적나라하게 예수님의 죽으심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부르짖으셨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편 22편 16절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히브리어로는 양 손과 양 발이다 그냥 수족이 아니다. 양 손, 양 발을 찔렀나이다. 다윗은 양 손, 양 발에 찔린 상처를 받은 적이 없다. 18절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다윗은 완전히 벌거벗은 일이 없다. 다윗이 원수에게 잡혀 겉옷도 속옷도 다 벌거벗겨져서 그런 수치를 당한 일이 없다. 두 손과 두 발이 상처를 받은 일이 없다. 이것은 다윗이 자기 노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를 불렀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아니면 그가 거짓말을 했던지.
그런데 여기 시편 22편 14절 말씀에 보시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예수님의 마음의 절망과 고통, 하나님의 영원히 소멸하는, 없애버리는 뜨거운 저주의 심판의 불을 받고 불덩어리로 재가 되어 없어지시면서, 영원한 죽음을 당하시면서 그가 당하신 고통을 그대로 여기에 묘사하고 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절망이다.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암 선고를 받을 때, 몇 달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정말 우리의 마음이 물같이 쏟아지는 경험을 한다. 절망이다.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다음에 몸부림을 치면서 뼈가 다 위골이 된 일은 없다. 그의 마음의 상태를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에 “내 마음은 초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다고 말하고 있다. 절망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영원히 버림을 받으시는, 영원히 심판의 불에 사라지시는, 영원한 사망을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절망을 마음이 녹아서 초밀같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그 영원한 저주의 불의 심판에 몸부림을 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내 모든 뼈가 어그러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 민수기 21장 9절에 구리로 만들었던 그 뱀의 모습은 히스기야 왕 당시까지 오랫동안 마치 그것을 쳐다보면 그 뱀이 나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매달아 놓고 바라보고 우상처럼 섬겼다는 성경의 기록이 나온다. 이름이 우리 한국말로 번역되기를 ‘느후사라단’이라고 하는 뱀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뱀의 모습이 그냥 매달려있는 뱀의 모습이 아니고 온 몸을 뒤트는 그런 뱀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심적 고통, 정말 꼼짝 못하게 못을 박아놓고 영원한 불에 태우시던 영원히 없애버리시던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안에서 그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던 그의 마음이 초밀같이 녹아지고 그의 마음이 물이 쏟아진 것처럼 쏟아지시던 그 절망과 고통을 표현하기에 넉넉한 표현이었다.
그것이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저주였다. 우리는 주님의 저주 받으심 속에서 그 영원한 저주를 피할 수 있었고 그 영원한 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저주를 해결하시고 주님은 우리를 가슴에 안고 부활하셨다. 에베소서 2장 5절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놀라운 부활에 우리 다 함께 참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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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요한복음 3장 14~15절
- 고린도후서 5장 21절
- 민수기 21장 8~9절
- 마태복음 20장 28절
- 시편 22편
- 누가복음 24장 44절
- 사무엘하 23장 1~2절
- 민수기 21장 9절
- 에베소서 2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