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종자의 거듭남

by blog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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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이란?

요한복음 3장 3절에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구원 얻는 일에 관해서 절대적 조건을 말씀하신 몇 번의 말씀중 하나이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 말씀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 마태복음 5장 20절에 나타난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바리새인의 의라는 말이 나온다. ‘의보다 낫지 못하면’ 여기서 주님께서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는데 위에 것은 생물학적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고, 아래는 율법적 측면에서 하신 말씀이다. 의라는 단어, 이것은 법이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똑같다. ‘거듭난다’는 이 말은 본래 헬라어에서 보면 ‘거듭’이라는 말이 ‘위에서’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아노텐’이라는 단어인데 ‘위에서’라는 뜻이다. 물론 ‘다시’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만 원래 그 말 자체는 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위에서 난다’는 말이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23절>에서도 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라고 표현을 하신다. 예수님의 출생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땅에서, 아래서 나셨다. 그런데 위에서라는 것을 표현하실 때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이것을 마태는 마태복음 1장 18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말씀을 기록한다. 그것을 “성령으로 나셨다”라고 말씀한다. 

성령으로 나셨다는 말은 뜻이 여러 가지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 되심을 버리신 예수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만드시는, 즉 인간으로 창조하시는 말씀을 가리킬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성령(하나님)의 본능, 곧 사랑의 본능(본성)으로 예수님을 창조하셨다는 말씀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위에서 난다는 표현은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말씀을 가리킨 것이다. 

구약에도 전도서 12장 7절에 보면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했는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 ‘신’에 관해서 전도서 3장 21절에는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말씀했다. 여기서 ‘신’, ‘혼’은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는 같은 단어인데 정확한 뜻은 ‘숨’, ‘호흡’이다. 그것이 ‘하나님께로 간다’, ‘위로 간다’ 이것도 역시 같은 표현이다. ‘위’는 거듭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어로 성경에 쓰이고 있다. 어쨌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유전자로 태어났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본성

그렇다면 위에서, 하나님의 본성으로 났다고 하신 이 하나님의 본성이 뭘까? 이것을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는 베드로사도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 이 ‘성품’이라는 단어는 본래 신약성경 헬라어로 ‘푸시스’라고 한다. ‘푸시스’는 그 말의 뿌리가 동사 ‘푸오(태에서 낳다)’에서 왔다. 뜻은 ‘태생’ 혹은 ‘종자’라고 우리말로 흔히 번역한다. 

태어났기는 했지만 어떤 태에서 났느냐? 예를 들어 사람 태에서 났느냐, 개의 태에서 났느냐? 그 태를, 종자를 강조하는 태어남을 ‘푸시스’라고 흔히 부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할 때의 그 단어의 근원을 찾아가 보면, ‘하나님의 종자로 태어났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푸시스’를 ‘종자’라고도 번역한다. 

헬라어에 ‘태어난다, 낳는다’는 ‘겐나오’라는 일반적인 단어가 있다. 그 단어와 달리 이 ‘푸오’ 혹은 ‘푸시스’라는 단어는 태생을 가리키는, 그 종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유전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셨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 히브리서 1장 1~4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예수님의 모습을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기를 ‘그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볼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똑같은 본체, 즉 밖으로 드러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양이 되셨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외적인 표현만이 아니고, 내적인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단어인 것이다. 

씨와 열매

우리가 흔히 호박씨를 심으면서 호박을 머리에 그려본다. 호박씨를 심을 때 우리가 오이를 얻으리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호박씨 속에 호박이 들어있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본성이 밖으로 드러난 상태를 우리가 성품 혹은 품성 혹은 그것이 밖으로 형상화 되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본성이 밖으로 드러났을 때 나타나는 모양을 가리킨다. 형상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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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듯이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라는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본성은 나중에 열매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로 그 모양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본성은 씨이고, 밖으로 나타난 열매는 성품 혹은 형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본성은 나중에 열매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로 그 모양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큰 혼란이 온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려고 한다. 생각도 통제하며 바꾸고, 얼굴 모양도 바꾸고, 말도 바꾸고, 습관도 바꾸고, 그래서 하나님의 모습과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려고 한다. 즉 씨가 없이 열매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과 똑같은 이야기다.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밀가루를 가지고 빵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밀가루를 만들지 않으면 절대로 빵은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노력을 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어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성경과 다른 이야기이다. 씨를 심어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거듭나야 된다고 할 때는 열매가 거듭나는 게 아니고, 씨가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3절에 예수님께서 나무(종자)도 좋고 열매도 좋다 아니면 나무(종자)가 잘못되고 그래서 열매도 잘못됐다. 나무가 좋으면, 즉 종자가 좋으면 좋은 열매가 열린다. 이렇게 말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말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나쁜 열매를 열심히 고쳐서 좋은 열매가 되면 좋은 종자가 만들어 질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일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지 열매가 나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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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품성 변화라는 말을 자주 한다. 품성이 변화되어야 하늘에 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이렇게 노력하고 저렇게 노력하고,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고 절제하고 심지어는 음식도 바꾼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근본 씨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풀씨를 만드는 공장은 없다. 꽃씨를 만드는 공장이 있는가? 없다. 볍씨, 쌀 씨를 만드는 공장? 없다. 어떤 위대한 과학자도 풀 씨 하나를 못 만든다. 

진화론이라는 과학은 씨가 저절로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그것이 계속 유전하다보면 원래 것은 없어지고 새 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유전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잘못된 이야기이다. 종자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 

종 자체에서, 예를 들면 개가 작은 개였는데 큰 개가 된다든지 혹은 개가 영리하지 못한 개였는데 어떤 처방을 받아서 점점 머리가 좋아져서 머리가 좋은 개가 될 수는 있다. 그런 이야기는 가능하다. 소위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소진화는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이렇게 진화론적 입장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 시간에 계속 하도록 하자.

키워드 : 거듭남, 종자, 요한복음, 신, 혼, 숨, 호흡, 본성, 씨, 품성, 나무, 열매, 마태복음 

성경구절

  • 요한복음 3장 3절
  • 마태복음 5장 20절
  • 요한복음 8장 23절
  • 마태복음 1장 18절
  • 전도서 12장 7절
  • 전도서 3장 21절
  • 베드로후서 1장 4절
  • 히브리서 1장 1~4절
  • 마태복음 12장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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