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인정함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죄'란 일련의 잘못된 행위들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과 생각의 상태를 가리킨다. 구원의 첫번째 요소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이러저러한 죄들을 범했음을 인정하는 것 그 이상이다.
우리는 그러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어떤 세력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세력을 "죄의 세력"이라 한다. 골로새서 2:11, (쉬운)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여러분은 새로운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손으로 행하는 육체적인 할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죄'에 대하여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죄의 세력"에 대해 과소평가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러저러한 밖으로 나타나는 죄된 행위들을 정복하면 '죄'를 정복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죄된 행위들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외적인 노력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나쁜' 행위를 중단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야비하며 자신의 선함을 뽐내게 될 수 있다.
성경은 죄인의 상태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심한 표현을 서슴치 않고 사용하고 있다. 즉 죄인의 상태를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속박, 노예, 종, 그리고 타락 등의 용어로 나타내고 있다. 인류는 '죄로 인해 죽었고' '잃어버린바 되었다'
사람은 날때부터 냉랭하고 어둡고 사랑이 없다. 본성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악하다. 우리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악하며 그렇다면 어떻게 선한 것을 낼 수 있겠는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기 14:4) 그리스도를 떠나서 행하는 모든 일은 사욕과 죄로 더러워진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힘으로 행함으로써 거룩하여 지려고 하는 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11-12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고 기도한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바리새인의 상태는 모든 죄 중에 교만과 자부심이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고치기 어려운 죄이다.
그 이유는 내가 선하다고 느낄 때 나는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우상 숭배와 자기 찬양의 정신에 기울어져 있다.
죄를 이기는 방법
타락한 인류는 사단의 합법적인 포로이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인류를 그의 큰 원수의 세력에서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사단의 제안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강한 정복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거하셔서 그의 욕망을 지도하고 그에게 힘을 주지 않으면, 그처럼 무서운 원수를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단의 능력을 제한시킬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빠진 죄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자신이 힘으로 피해 나올 수는 없다. 우리의 마음은 악한데 우리가 그것을 고칠 수 없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기 14: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7). 교육과 수양과 의지력(意志力)의 연단과 인간의 노력은 각각 상당한 힘을 가졌으나 이것들이 근본적으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무력한 것이다.
이것들이 혹 행위의 외모적 단정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할지라도 마음을 고칠 수는 없으며 생애의 동기(動機)를 깨끗케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하여지려면 먼저 마음 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 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요 3:3) 즉 사람이 새 마음과 욕망과 새 목적과 새 동기를 받아 그것들로 새 생애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 같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요 3:3)다고 하셨다. 본성적으로 사람에게 잠재(潛在)하고 있는 선을 계발시키기만 하면 족하다는 관념은 치명적(致命的) 오해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7).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의 품성의 인자하심과 아버지 같은 사랑의 온정을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하나님의 율법의 지혜로움과 공의로움을 깨닫고 그 율법이 사랑의 영원한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넉넉지 않다. 사도 바울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부르짖기를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롬 7:16).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첨가하여 심령의 고민과 절망 중에 말하기를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라고 하였다. 그는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순결과 의로 갈망하여 부르짖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하였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죄의 짐에 눌린 자들의 마음에서 발하는 부르짖음이다. 이런 모든 부르짖음에 대한 대답은 다만 하나 뿐이니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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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골로새서 2장 11절
- 욥기 14장 4절
- 누가복음 18장 11~12절
- 욥기 14장 4절
- 로마서 8장 7절
- 요한복음 3장 3절
- 고린도전서 2장 14절
- 요한복음 3장 7절
- 요한복음 1장 4절
- 사도행전 4장 12절
- 로마서 7장 12,14,16,24절
- 요한복음 1장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