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 그것이 죄
이사야 44장 22절에는 다음과 같은 보증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죄를 도말하셨다는 말은 ‘죄를 완전히 없앴다’는 말입니다. 죄를 완전히 없앴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돌아오라’는 말씀은 흔히 성경에서 ‘회개한다’는 말로 쓰였습니다. 즉 ‘회개’는 내가 후회하고, 악한 무엇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고침을 받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turning back)’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보통 회개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페니턴스(penitence)’나 ‘리펜턴스(repentance)’ 모두 정서적인 후회와 참회를 의미할 뿐 하나님께 돌아가는 행위적 측면은 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회개'에 대해서는 5장에서 자세히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가서 잘못했다고 빌어서 그 응답으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우리가 돌아가기 전에 이미 다 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디모데후서 1장 9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우리가 회개한 다음에 정말로 이 사람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회개했는가 확인한 다음에 용서를 주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용서의 은혜를 언제부터 주셨을까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원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그 은혜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래 전부터 믿었지만 내가 회개해야 용서해 주신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을 때는 금식까지 하며 하나님께 빌고 매달립니다. 밥을 며칠씩이나 안 먹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실까 말까 한다고 착각했습니다.
여러분, 용서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용서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그분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돌아오라":(회개하라) 이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이미 완전히 다 없앴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어머나들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애들을 부릅니다. 밥먹으러 오라고 한 다음에 밥하고, 국 끓이고 그렇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실 때는 이미 '용서의 상'을 차려 놓으시고 와서 받아먹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5장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버리고 그 용서의 밥을 먹을 때 그 용서가 내 것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죄를 버리고 그 용서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주신용서’가 내 것이 되어 실제로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얘기입니다.
무엇이 죄일까요? 이런 용서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못된 짓 한 것만 죄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돌아오라, 회개하라!” 그렇게 말씀하실 때에는 분명히 우리 앞에 밥상이 차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디모데후서 1장 9절 중간에 보면, “오직 자기 뜻”이라 되어 있는데, 여기서 ‘뜻’이라는 본래 말은 헬라어로 ‘프로데시스(πρόθεσις)’라는 말로 ‘상차림(setting forth)’ 또는 ‘진설병’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히브리서 9장 2절).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밥상을 ‘차려 놓으셨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밥상을 다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시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용서의 밥상’을 차려 놓으셨습니다. 문제는 이런 용서의 밥상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을 거절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