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마태복음 5장 19절과 20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 주님께서 분명히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 말씀의 설명으로 마태복음 5장 19, 20절의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무슨 의미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앞뒤의 말씀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이 말씀이 앞의 18절에 나타나는데 율법의, 하나님의 말씀 곧 이 율법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 어떤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시면서 마태복음 5장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말을 순종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여기에서 이 ‘모든 말씀’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향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정신이 마음 가운데 가득하면,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리가 부모가 되어 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식이 그냥 지나가면서 한 숨 쉬는 말로 “저거 갖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면 그것까지도 아버지는, 어머니는 그것을 기억하고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사주고 싶어 한다. 그것보다 더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의 마음, 그 마음을 이 말씀과 비교해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 아이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힘없이 내뱉은 말도 엄마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넉넉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냥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버지 하나님이 하신 모든 계명을 다 지켜 드릴 것이 없나 하고 지킨다는 말이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 말씀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본심을 읽으면 그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가 자녀를 길러 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본능적인 사랑이 사랑의 율법을 지키게 만든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
우리 하늘 아버지가 우리를 본능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실 수 없기 때문에 아들까지 주신 것처럼,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본능적 사랑이 우리 안에서 꿈틀거려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효자라는 말을 했다. 효자라는 말을 할 때는 똑같은 표현이다. 무엇이 효자냐? 그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자라는 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안 됐지만 나의 아버지는 효자상을 거절한 유명한 효자다. 정말로 저희 할아버지를 사랑하셨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임종을 못하셨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셔서 흰 천으로 덮은 할아버지 머리맡에 앉으셔서 소리도 못 내고 우셨다고 한다. 저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내가 그때 너희 아버지 눈에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눈물을 봤다”, 방바닥에 시뻘건 피물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하셨다. 결국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사랑하셨고 효도하셨는데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칠년을 살 때가 있었다.
그때 당시 내가 제주도에 살았다. 월급이 아주 적어 형편이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 아버지께 변변치 않은 식사를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아내가 효성을 다해서 아버지를 모셨는데 하루는 육지에서 온 손님이 김을 한 톳 갖다 주셨다. 그 형편에 김은 귀한 것이었다. 나의 아내가 그 김을 신문지에 싸고 비닐에 싸서 다음 주에 오실 부흥 강사 목사님을 위해 반찬 대접할 것이 없어서 잘 두었는데 어느 날 나의 아버님이 식사하시다 말고 반찬이 이게 뭐냐며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집사람에게 지난번에 어느 분이 가져온 김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의 아내가 그것을 잘 구워 갖다 드렸더니 내 앞에 밀어 놓으시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그렇게 김치 찌게만 해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리고 잘못하면 병들어 죽는다고 하시며 그 접시를 우리 앞에 밀어놓으시는 것이다. 그날 아침에 갖다 드린 김 접시를 우리 앞에 미시며 먹으라고 하실 때 내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 그때가 5살 때인데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아빠가 어떻게 하시나 보자, 내가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깨달은 것은 “아, 효도는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날 먹을 수 없는 그것을 머리를 숙이고, 먹었다고 하기 보다는 눈물과 함께 쑤셔 넣었다. 아버지는 오직 이 자식의 건강과 행복만을 생각하셨다.아버지가 주신 것을 눈물과 함께 입 속에 밀어 넣으면서 “아,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영원히 사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우리에게 계명들을 주셨는데, 율법을 주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더 이상 고난을 받기를 원치 않으셨다. 조금도 고생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리고 막상 우리가 죄를 지어 죽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우리 대신 벌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듯이 십자가의 복음을 주시면서 내 용서와 내 사랑을 받아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사랑의 유전자
분명히 그 분은 이사야 9장 6절의 한 아기로, 핏덩어리로 우리에게 오셨다. 그의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이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 그 호소의 말씀을 우리가 들을 수 있어야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도, 복음도 그저 아저씨가 준 것처럼 생각한다. 아니다, 율법도 복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되신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가 지금 산상 수훈을 공부할 때에 누구의 입에서 이 말씀이 나왔는지를 먼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 3절에서는 네가 아버지의 유전자로 다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가 이 한 주일 다시 한 번 서로 깊이 느끼고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란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19절과 20절
- 마태복음 5장 19절
- 마태복음 4장 4절
- 요한일서 5장 3절
- 이사야 9장 6절
- 요한복음 3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