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율법의 완성 자 예수님

by blogsta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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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준수

오늘부터 우리는 예수님이 설명하시는 율법의 대헌장이라고 부르는 산상수훈의 말씀에 함께 가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산상수훈’이라고 한다. 산에서 말씀하셨다고 ‘산상’이라 하고 보물 ‘보’자, 가르칠 ‘훈’자. 흔히 ‘산상수훈’이라는 말을 쓰는데 정말 그렇다. 정말 보물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나눌 때마다 가슴이 설레인다. 정말 놀라운 말씀이다.

유명한 인도의 간디가 기독교인들은 싫었지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한다. 이 산상수훈은 역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비 기독교인들까지도 사랑했던 말씀이다.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마태복음 5장 17절, 18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여기 보면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예수님을 판단했는데그들이 만든, 그들이 정리한 구약의 율법을 예수님이 어겼다고 주장했다. 그런 예는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온다. 그래서 예수님을 율법의 파괴자라고 불렀다. 이 율법의 파괴자라고 불리운 예수님이 자기가 율법을 파괴하러 온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여기 ‘완전하게 하다’는 헬라어의 동사는 ‘플레레오’라는 동사이다. 성경에 이 단어가 아주 중요하게 쓰였다. 이 뜻은 ‘가득 채운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그 율법의 중요한 것들은 다 밖으로 버리고 껍데기만 조금 남겨두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23절“너희가 율법의 더 무거운 것”, ‘무거운 것’ 우리말로 ‘중한바’로 번역했는데 ‘중’자가 무거울 ‘중’자이다. 실제 원문도 똑같다. ‘무겁다’는 것이다. 중한, 무거운 것은 버리고 가벼운 것만 너희가 남겨두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어질 ‘인’ 믿음 ‘신’ 한마디로 이것을 이야기하면 사랑이다. 사랑의 세 가지 면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은 버리고 가벼운 율법의 형식과 문자만 남겨두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다시 가득 채우려고 왔다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셨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율법의 가벼운 것, 형식만 남겨두었는데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떤 분들은 잘못 얘기해서 사랑만하면 된다고 말한다. 아니다,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도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문자적 준수도 주님께서 분명히 의라고 인정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 가지고는 하늘에 못 간다는 것이다. 율법의 본질적인 요구를, 곧 사랑이 되어지는 상태가 아니면 못 간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자적인 준수를 주님께서 무시하셨느냐 하면 아니다, 결코 무시하지 않으셨다. 이것을 인정하셨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항상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율법의 형식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고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오늘부터 다루는 이 산상수훈은 사실 율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드러내셨다.

율법의 본

율법의 외향적 모습은 유대인들이 너무나 잘 설명했다. 그래서 유대인의 법에 의하면 하라는 법과 하지 말라는 법을 합쳐서 자기들이 정리한 것으로 613개의 법을 구약에서 찾아내어 그것을 정리해 놓았다. 아주 훌륭하다, 이것도 법이다. 문자적인 율법의 준수도 의라고 주님께서 설명하셨다. 그러나 그 문자적인 율법의 준수의 의 말고 더 큰 의,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의 의를 주님께서 설명하신 것이 산상수훈이다. 이 산상수훈 가운데에 자주자주 예수님이 옛 사람에게 말한바, 옛 사람에게 말한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러면 옛 사람에게 말한바 말한 것은 틀린 것이냐? 아니다, 틀린 게 아니다. 정말로 요즘 기독교계 안에 사랑을 강조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랑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율법의 문자적인 준수를 무시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죄송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주님은 분명히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래서 여기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언급하신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라”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 교훈으로만 완전케 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본래의 뜻을 잘 드러내서 설명하신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주님은 당신의 몸으로, 당신의 삶과 죽으심으로 완전케 하셨다. 그래서 율법이 무엇이냐? ‘율법은 이것이다, 십계명이다. 혹은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것이 율법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율법은 말씀만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분의 삶과 죽으심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렇게 행한 사람이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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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은 당신의 삶과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예수님께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다. 뜻을 다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다.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0장 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다. 목숨을 다하셔서 아버지를 사랑하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아버지 뜻은 당신의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우리에게 영원한 목숨,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실 것을 서약하실 때에 마태복음 3장 17절, 예수님의 세례(침례)식 때 하늘로부터 들렸던 음성은 똑같은 음성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하셨는데 왜 내가 이 아들을 사랑하는가 하면 내 마음의 소원, 죄 많은 내 자식들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일에 내 아들 예수가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는 그 놀라운 희생에 대해서 아버지가 그 아들에 대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의 히브리말은 ‘라차’ 혹은 ‘하페츠’라는 단어이다. 그것은 기쁨 중에서 감정이 섞인 기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기쁨 그것을 일반적으로 ‘뜻’이라고도 번역을 한다. 이사야 53장 10절에 보면 거기에 ‘뜻’이라고 번역이 되어있다. “그가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 ‘뜻’(하페츠)은 정확하게 말하면 ‘기쁨’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의 희생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약속, 서원을 할 때, 세례(침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내 기쁨의 뜻은 내 소원을 이루어 주는 자라는 표현이다.

예수님의 삶-율법의 완성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자기 아들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 자기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 놀라운 이야기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다. 마치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듯이, 자기 입에 넣지 않고 자식의 입에 넣듯이, 자신은 쓰지 않고 사랑하는 아들의, 딸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듯이 사랑이신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보다도, 자기 아들마저도 사랑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세상과 독생자를 바꾸신 하나님! 바로 그러한 사랑이 완전하게 된 상태를, 이루어진 상태를 ‘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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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6장 25절에 분명히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본능적 사랑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삶과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율법은 무엇인가?율법은 무슨 행동이나 물건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요 복음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복음으로만 알았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까 복음이다, 너무나 감사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신 예수님의 삶 자체가, 그 죽으심 자체가 율법이다.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하신 기도는 율법을 완성시킨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왔다”하신 그 완전케 하신다는 의미는 “그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완전케 하러 왔다” 이 말씀이 마태복음 22장 40절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에 모든 계명들이 걸려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헬라어의 본래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그가 사신 삶과 죽으심을 통해서 사랑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율법을 지키신 근본 동기요 결과이다. 이 ‘율법의 의’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17절, 18절
  • 마태복음 23장 23절
  • 마태복음 5장 20절
  • 마태복음 22장 37-40절
  • 요한복음 10장 17절
  • 마태복음 2장 17절
  • 이사야 53장 10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신명기 6장 25절
  • 누가복음 23장 34절
  • 마태복음 22장 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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