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사랑과 율법-1

by blogstar posted Mar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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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의 본성

드디어 우리가 신학적인 긴 통로를 지났다.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결과, 곧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의 본성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사도바울의 권면들을 생각해 보자.

앞에서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조금씩 나누었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영적 이스라엘이 되기를 바라셨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이 되길 원하셨지만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래서 남은 자라는 사상이 나타나고 이제 신약에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예수님 당시는 제자들이다.

이 제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증거 되고 그 증거를 받은 이방인들 가운데도 남은 자들이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은혜로 구원 얻은 자들,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증거의 말씀이 갈라디아서 6장 16절에 나온다. 사도 바울이 당시 갈라디아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 그렇게 부르고 있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이 갈라디아서는 이스라엘에 관한 중요한 정체성의 설명을 하고 있다.

갈라디아 3장 7절“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즉 이스라엘이다. 갈라디아 3장 9절에도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 3장 29절“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같은 표현들이 이 갈라디아서에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로마서에도 로마서 2장 29절“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구약에 이미 이런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있다. 다시 로마서 12장으로 돌아오면서 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결과인 열매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 순종함

특별히 여기 로마서 12장 2절 가운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 나타난 마음은 ‘누스’라는 헬라어다. 이 말은 헬라어에서 일반적으로 ‘이성’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 ‘누스’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는 여기 표현한 그대로 분별하는 분별력, 판단력, 이성을 가리킨다.

이 ‘이성’ ‘누스’의 우리말은 ‘마음’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 이 새롭게 한다는 말은 항상 같다. 창조의 결과를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행위를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표현하신다. 이 새롭게 되어짐은 항상 창조의 결과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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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시기를 마음을 새롭게 하라, 다시 말하면 우리의 도덕적 판단력이 날마다 새롭게 되어질 필요성에 대해서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 이 도덕적 판단력 혹은 분별력이 새롭게 되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율법이 본성적으로,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더욱 깊이 그리고 새롭게 깨달아 가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계속적으로 하는 표현가운데 로마서를 연구하시는 이들이 직설법에서 명령법으로 바뀐다고 흔히 그런 소리를 한다. 그런데 이 명령법이라고 하는 것은 직설법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신 결과는 자동적인 순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믿음이란 단어는 맡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맡기는 행위는 그 자체가 순종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과 순종을 분리하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한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종노릇한다는 표현으로 썼다. 우리말은 ‘섬김’으로 번역했다. 우리의 믿음이 순종을 절대로 대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 자체가 맡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전서 4장 17절에는 복음을 믿는다고 표현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순종한다고 표현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이 ‘복음을 순종한다’는 표현, ‘믿는다’는 표현과 같은 말이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자동적인 순종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져서, 그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서 새로운 그리스도의 본성이 우리 안에 창조되어져서 일어나는 결과이다. 결코 이것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행위가 아니다. 그리스도 사랑의 열매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6장과 7장에서 말씀했듯이 이 죄의 본성과의 힘든 투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질지라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늘 머리에 유념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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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울이 로마서 12장 1절“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산 제물이 되라는 명령을 하신다. 여기 한 가지 기억해야 될 사실은 구약에 나타난 모든 제사 제도에 나타난 제물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양은 우리가 아니고 분명히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바울이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바치신 그 제물을 우리가 받는 입장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제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드리신 것이다. 우리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아벨이 제사를 드렸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벨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다. 양을 분명히 하나님이 창조로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그 양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는, 양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자기 아들이삭을 바칠 때 이삭의 질문에 했던 똑같은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양을 친히 준비하시느니라. 그렇다. 하나님은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견디실 수 없는 분이다. 이사야 43장에도 똑같은 말씀이 나온다. 이사야 43장 25절,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자식들이 문제가 있으면 그 자식의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부모는 견디지 못한다. 그 자식의 죄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다 해결해야만 그 다음에 마음이 편하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그 자식의 문제를 해결하실 때 비로소 쉬실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이 만들어 낸 것이 용서이다. 그 용서의 사랑의 본능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 양이 예수님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제물이 분명히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헌신해서 드린다고 하는 그 생각 자체가 성서적이지 않다. 기억하라, 창세기 4장 4절에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 다음에 표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벨과 제물을 받으셨다, 열납 하셨다고 기록한다.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불태우셨다고 기록했다. ‘열납 하셨다’하는 말을 ‘불태우셨다’ ‘불을 내리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실제로 불에 탄 것은 제물만이 아니고, 양만이 아니고 그 양에 옮겨 놓은 아벨의 죄였다. 죄가 탄 것이다. 아벨의 죄가 탄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벨의 죄를 불태우셨다는 말을 성경은 창세기 4장 4절에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불태우셨다. 아벨의 죄가 아벨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왜냐하면 죄인은 죄를 만들어내는 공장이기 때문이다. 죄인에게서 죄를 분리할 수가 없다. 죄인에게서 죄를 분리해서 죄인을 의인이나 성자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사단의 걸작품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만들고 성자도 만들고 의인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속에서 이 죄의 유전자 형질을 꺼내서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유전적 형질을 가진 우리의 몸은 반드시 죽어서 없어져야 한다. 산 채로 그것이 홀연히 변화하므로 부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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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제물이신데 왜 우리에게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리라고 표현했는가?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도는 예수님의 몸의 일부이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일부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우리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몸이 이미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 우리 몸을 드린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의 하시는 봉사, 그의 계속되는 희생과 헌신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결코 내가 믿음이 있어서, 좋아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어서 드린다는 생각은 성서적이지 않다.

분명히 로마서 14장에 가서 바울이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드릴 수 있겠는가? 마틴루터킹 목사님 말씀처럼 오늘 예수님은 멸망과 죄악으로 돌아가는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반대로 거꾸로 돌리기 위해서 그분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가신다. 마틴 목사님은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흑인의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자기가 총에 맞아 암살을 당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한 일부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혹은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를 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라린 핍박과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그들이 한 일이 아니다.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서 하신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너희를 핍박하면 곧 나를 핍박하는 줄 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함

이제 바울은 로마서 12장 3~21절 가운데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될 것을 말씀하셨다.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함’이라는 제목이 나타난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3절에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 다음에 계속해서 성령의 은사,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은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은사, 이 은사들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의 생각을 할 때에 잘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형제들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구약에 나타난 고라의 반역을 보자. 그는 분명히 성직자다. 제사장은 아니지만 거룩한 성직의 구별된 사람이다. 레위인도 역시 구별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론이 가졌던, 모세가 가졌던 더 높은 성직을 찾아, 어쩌면 인간적인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 그것 때문에 그는 멸망을 당한다.

키워드 : 로마서12장, 영적이스라엘, 아브라함의자손, 아벨, 복음, 순종, 산제사, 열납, 제물, 지체

성경구절

  • 갈라디아서 6장 16절
  • 갈라디아 3장 7절
  • 갈라디아 3장 9절
  • 갈라디아 3장 29절
  • 로마서 2장 29절
  • 로마서 12장 2절
  • 요한계시록 21장
  • 베드로 전서 4장 17절
  • 로마서 6장과 7장
  • 로마서 12장 1절
  • 이사야 43장 25절
  • 창세기 4장 4절
  • 로마서 14장
  • 로마서 12장 3~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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