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로마서 7장의 사람-1부

by blog posted Jan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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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이제는 로마서 7장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로마서 7장 6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이 로마서 7장 같이 로마서에 많은 논란이 있는 장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바울이 로마서 7장을 기록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로마서 7장에 들어서면서 바울은 일인칭 대명사, 곧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로마서 5장에 말씀하는 그 아담, 아담에 관한 모형적인 ‘나’라고 말씀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 말에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로마서 7장에 바울이 ‘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 바울이 겪었던 이 영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은혜를 발견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로마서 7장 1~6절 사이에 바울은 결혼에 관한 법을 한 예로 들고 있다. 어떤 여인이 한 남편과 더불어 살았는데 그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그것은 곧 음행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바울이 여기서 비유로 말하고 있는 전남편, 본래 남편은 율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율법이라는 남편은 정말 도무지 어떠한 잘못도,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그런 엄격하고 무서운 남편처럼 설명을 하고 있다. 엄밀하게 이 율법은 어떤 불행의 씨도, 곧 죄의 아무리 작은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들이 이미 죄의 본성들을 가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율법을 범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 율법이 가혹하고 엄격한 것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나중에 로마서 7장 중간에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고 오히려 나는 육신에 속했기 때문에, 내가 죄의 본성에 속했기 때문에 죄 아래 팔렸다고, 율법이 잘못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인정하긴 하지만 어째든 이 로마서 7장 전반부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이 율법은 대단히 무섭고 두려운 율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율법은 아무리 작은 불행의 씨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바울이 언급하는 이 율법은 대단히 무섭고 두려운 율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율법은 아무리 작은 불행의 씨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그분의 본성이,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작은 불씨라도 그 불씨가 커지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이 죄를 조금도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율법은 분명하게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은 죽지를 않는다. 남편이 죽어야 다른 남자에 가서 행복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겠지만 전 남편이 죽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서 다른 남자한테 결혼을 해서 새 살림을 하겠다. 그렇게 썩 합당한 비유 같지는 않지만 바울은 내가 율법에 대해서,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죄에서 율법에 대하여 내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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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로마서 7장 4절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직접 죽은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내 몸을 대신해서 당신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7장 4절에 그렇게 나를 위해서, 내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죄를 완전히 해결하신 다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영원히 살아계신다. 죄를 완전히 해결하신 분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신다. 예수님의 죽으심 속에서 우리는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율법이 내리는 저주에 대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에 대해서 나는 이미 해방이 되었다. 그래서 나 대신에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에게 내가 다시 결혼을 해서 이젠 과거에 내 죄의 본성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못했던 그래서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그 삶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다. 다시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비유를 로마서 7장 전반부에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 속에서 우리는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이 내리는 저주에 대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에 대해서 나는 이미 해방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로마서 7장에 나타난 ‘율법에 매었다’는 그 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자. 이 율법에 매었다는 말은 분명히 율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일에 대해서, 율법이 요구하는 사랑의 완전, 전적인 본성적인 이타심의 완전, 그것을 우리는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7장 6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속에서 우리는 그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일에 대한 요구를 주님이 대신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율법이 내리는 요구에 대해서 벗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7장 6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기에 사도 바울이 ‘영의 새로운 것’이라고 말씀한다. 

영의 새로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라’고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이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구에게 자기를 드려서 섬기는 종 곧 자원하는 종이 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사도바울이 ‘영’이라는 말과 ‘새로움’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이 ‘새로움’이라는 말은 디도서 3장 5절에 보면 ‘중생의 씻음’과 ‘거듭남’이다. 중생의 씻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고 그 다음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라는 특수한 단어를 썼다. 이것이 ‘영의 새롭게 하심’이다. 

이 ‘새롭게 한다’는 말은 창조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창조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새’라는 말씀, 신구약을 통틀어 ‘새’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그것은 다 새로운 창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 ‘영의 새로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과연 ‘영의 새로움’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로마서 8장에 가면 바울이 잘 설명하고 있다. 곧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내재(內在)’라고 여러 말씀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속 ‘내’ 거할 ‘재’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상태를 ‘영’이라고 표현했다(롬 8:9). 그래서 로마서 7장에 나타난 이 영이라는 말은 6장과 혹은 8장의 말씀들을 연결해서 그 문맥 안에서 영이라는 단어를 해석해야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영의 새로움’이라고 표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성령과 하나 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 영의 새로움 다시 말하면 새롭게 창조된 우리 심령 속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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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계속해서 로마서 7장 6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라” 여기 ‘의문’이라는 말이 나타난다. ‘의문의 묵은 것’이라고 한 표현은 헬라어로 ‘그람마’라는 말로 ‘글자’ ‘문자’이다. 문자의 묵은 것, 다시 말하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문자대로만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고 하는 그 문자대로만 율법을 지켰던 소위 율법에 대한 형식적인 준수,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여기에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다음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그것은 아무 효력이 없고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은혜로 거듭난 본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은혜로 거듭난 본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육신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 7절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니까 그러면 율법은 잘못된 것이냐? 율법이 죄냐?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울이 다시 논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 탐심을 가지고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죄의 본성, 소위 육신이라고 표현한 본성이다. 이 ‘육신’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 

이 ‘육신’이라는 단어는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헬라 사람이 쓰던 그런 입장에서 쓴 말이 아니다. 성경에 육신과 영이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 육신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창세기 6장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신’은 ‘성령’이다. 나의 영이, 신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가시고 그리고 사단의 영이, 죄의 영이 사람의 영을 지배하는 상태, 이것을 ‘육신’이라고 하셨고,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렇게 표현했다. 육체, 육신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 아닌 사단의 영이 지배하는 상태를 육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아닌 사단의 영이 지배하는 상태를 육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반대로 로마서 8장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속에 계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표현한다. 이것을 영이라고 한다. 사단의 영 + 사람의 영 = 육신이고 하나님의 영 + 사람의 영 = 영이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도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사람의 영속에 같이 계시는 상태를 영이라고 했고, 하나님의 영이 떠난 상태, 사단의 영이 지배하는 상태를 육체, 육신이라고 표현한 것뿐이다. 사람 속에 영이 따로 있고 육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존재가 둘로 나뉘어졌다는 그런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한 말씀이 아니다. 바울의 여러 말씀들은 이미 구약에 있는 사상, 곧 히브리 사상을 헬라어로 표현했을 뿐이다. 

과연 율법이 죄냐? 그렇지 않다고 여기 분명히 말하고 있다. 율법이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한 사랑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악해서가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이 악해서 곧 사단에게, 죄에게 팔려서 그 악한 본성이 죄를 저질렀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경험으로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할 때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죽은 것은 사도 바울이지 율법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율법이 죽어서 없어져버린 것처럼 생각한다. 결코 아니다! 율법은 영원히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길이다. 영원하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영생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도 있었고 인간이 타락한 다음에 다시 회복되는 방법이고 새로운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서도 영원히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 사랑에 맡기므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의, 율법을 이루시는 그 일이 계속되는 상태를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의, 율법을 이루시는 그 일이 계속되는 상태를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로마서 7장 10~12절에 보면 에덴동산의 모습을 우리가 좀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10절,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에덴동산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계명은 무엇이었는가? 그 계명을 범했을 때, 생명나무의 길로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막으셨다. 창세기 3장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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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범죄 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막으신 생명의 길은 선악과,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 그 지식의 나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법이 아니면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모른다. 그것을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의 결과, 그 고통, 그 아픔이 영원히 가지 못하도록 하셨다. 죄를 범한 상태에서 생명과를 먹으면 그것은 영원한 저주가 될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를 먹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로마서 7장 10~12절에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을 선악과와 생명과로 비유한다면 ‘생명과에 이르게 할 선악과가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 계명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1절, 이제 결론을 내린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여기 의인화시킨다면 죄는 마귀다. 마귀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곧 선악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 그러니까 나를 죽인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고 사단이다. 

죄가, 사단이 우리를 죽인 것이지 율법이 우리를 죽인 것이 아니다. 율법은 분명히 가운데 서서 네가 이 법을 범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제시할 뿐이다. 여기 사도바울이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인 장본인은 바로 죄 그 자체, 사단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기 때문에 죽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죽지 말라, 결코 범하지 말고 죽지 말라는 것이다. 율법이 가진 선함이다. 율법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를 정죄하고 죽인다고 말하지 않았다. 

키워드 : 로마서7장, 율법, 하나님의품성, 본성, 육신, 육체, 하나님의영, 그리스도의영, 그리스도의사람, 생명나무, 선악과, 영생

성경구절

  • 로마서 7장 1~6절
  • 고린도후서 5장 17절
  • 로마서 8장 9절
  • 로마서 7장 6절
  • 갈라디아서 6장 15절
  • 로마서 7장 7절
  • 창세기 6장 3절
  • 고린도전서 6장 17절
  • 로마서 7장 10~12절
  • 창세기 3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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