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하나님의 의는 자기희생의 사랑이다.

by blog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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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의 의

예수님께서 팔복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5장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의’라는 단어에 대해서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따라가 보면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말씀하신다. 여기서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라는 ‘의’를 말씀하신다.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의가 있고, 도덕적인 의보다 한 단계 더 위 수준의 의를 바리새인의 의라고 부른다. 도덕적인 의는 어떤 면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수평적인 의를 말한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서도 이루는 의를 바리새인의 의, 즉 종교적 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가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할 때의 의는 도덕적인 의를 가리킨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참 좋은 사람, 의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의보다 나은 의가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의를 다 이룬 의를 종교적 의, 혹은 바리새인의 의라고 말하는데 이 보다 더 나은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이제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를 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의 의를 결단코 무시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좀 더 잘 지키려고 구약에 나타난 모든 법조문을 꺼내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무려 613가지나 되었다고 한다. 소위 바리새인들이 만든 구약의 법들이다. 

바울의 깨달음

이 613개의 법을 다 지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우리가 아는 사도바울이다.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로 있을 때 그가 빌립보서 3장 6절에 보면, 내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613가지의 법을 다 지켰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흔하지 않는 일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결점도 있을 수 있고 연약한 점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바울이라는 사람은 정말 놀랍게도 유대인들의 법을 다 지켰다는 것이다.

이 바리새인의 법에 대해서 사도바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그 바리새인의 의라고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킬 때에 그 법을 문자로 지킨 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서 2장 28, 29절을 보면,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의문’이라고 하는 우리 한국말 번역은 본래 글자가 헬라어로 ‘그람마(γράμμα)’라는 단어인데, ‘글자’ ‘문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위 십계명이나 구약에 나타나는 법들을 문자로는 지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엄밀하게 말하면 문자로도 다 지키기가 불가능하다. 사도 바울이 이 율법의 이야기를 꺼낸 뒤에 나중에 로마서 7장에 가면 자기가 율법을 다 지킨 줄 알았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자기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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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이 로마서 7장 7, 8절에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여기 사도바울이 십계명 중의 10번째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로마서 7장 7, 8절, 그는 자신이 문자적으로 율법을 다 지킨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문자적으로도 다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여기서 인정하고 있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 겉으로는 지킨 것처럼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자기 마음속에 끊임없이 탐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분명히 말하기를 로마서 7장 9절,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여기서 아주 명백히 말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전에는 율법을 다 지킨 줄 알았는데 율법을 제대로 보니 자기는 율법 앞에서 이미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했던 이야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다시 율법을 들여다보니 자기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생각의 범죄

특별히 열 번째 계명은 우리의 생각, ‘탐내지 말라’ 다른 계명과 달리 열 번째 계명은 사실은 직접적으로 생각의 죄를 언급하고 있다. ‘간음하지 말라’, 육체적으로 간음을 안 하면 간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냥 단순하게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 번째 계명은 어떤 행동에 대한 계명이 아니다. 간음을 하거나, 도적질 하거나, 살인 같은 직접적인 외적인 행위에 대한 계명이 아니고 생각에 대한 계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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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 마태복음 5장 27, 28절,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우리가 말하는 간음의 개념이 행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분명히 하셨다.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직접적으로 음욕, 즉 생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열 번째 계명은 아주 정확하게 있다.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면 이미 그 계명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죄이다. 분명히 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다시 반복하지만 의라고 하는 것은 율법을 다 지킨 결과를 의라고 한다. 율법 자체가 의이지만, 그러나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나타날 때에는 의라는 단어로 나타나는 단어는 율법을 지킨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자기 희생의 사랑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바리새인의 의, 이 의도 지키기 어렵다. 사실은 불가능하다. 이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의 의인데 과연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봉사를 시작할 때에 세례(침례)를 받으러 세례(침례) 요한에게 가신다. 그 때 세례(침례) 요한이 말하기를 주님, 제가 어떻게 감히 주님께 세례(침례)를 드릴 수 있습니까? 내가 세례(침례)를 당신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마태복음 3장 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여기 세례(침례)를 받으러 가신 예수님이 세례(침례)를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포괄적이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예수님 자신이 죄가 있어서 받으신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시는 서원의 예식이었다. 당신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서 죽고 장사되고 부활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의라고 하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자기희생의 사랑, 자기희생의 의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어떻게 희생하는가? 자기희생은 영원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시고, 영원히 버림을 당하시는 그런 희생이다. 영원히 버림을 당하시는 희생은 자원하는 희생이다. 곧 이 희생은 그 근원이 사랑인데, 그 사랑은 계산하고 하는 사랑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희생하는 것과 같은 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야된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렸다. 그 때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말한다. 마태복음 16장 23절,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 사랑, 자기를 십자가의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이 사랑은 막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본능적 사랑이다. 이 사랑을, 그 희생을 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키워드 : 하나님의의, 자기희생, 사랑, 본능, 바리새인, 십계명, 의문, 도덕, 세례, 침례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6절
  • 마태복음 5장 20절
  • 마태복음 6장 33절
  • 빌립보서 3장 6절
  • 로마서 2장 28,29절
  • 로마서 7장 7,8,9절
  • 마태복음 5장 27,28절
  • 마태복음 3장 15절
  • 마태복음 16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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