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의의 성격

by blog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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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본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마지막 단어, ‘의’라는 단어를 함께 생각해 보겠다. 이 ‘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는 ‘쟈다크(צךקה)’ ‘의롭게 하다’는 동사이다. 이 동사가 명사가 되면서 ‘의’라는 단어로 바뀌는데, ‘쟈다크(צךקה)’라는 ‘의롭게 한다’는 단어는 이 어원이 참 다양하다고 한다. 신학하시는 분들이 어원을 찾아서 여러 가지로 밝혀 놓은 것이 있다. ‘반듯하다’ ‘구부러지지 않다’ 등등 여러 어원들이 있는데,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찾아보면, 이 단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에 대한 성경의 여러 정의들이 있다. 신명기 6:25에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신명기 6장 25절에 성경에 나타난 의의 정의는, 우리의 의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이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킬 수 있겠는가? 그러면 왜 이런 말이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우선, 이 율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법이다. 하나님의 마음의 법이다. 그것이 그 마음의 생각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 법이다. 

예를 들면, 거짓말하지 말라 하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실 수 없는 분이다. 그래서 율법의 그 근본정신 즉, 본질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의 말씀을 보시면 율법의 본질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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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반복한다.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율법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율법의 두 기둥 위에 모든 말씀이 걸려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설명하신 율법의 본질이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속에 계신 율법이다. 사랑의 대원칙,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만을 사랑하는 사랑의 원칙이 율법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본질이라는 것이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말은 이 사랑의 본질이 없으면 지킬 수가 없다. 그것을 예수님이 마태복음 22장 40절에 결론으로 “이 두 계명 위에 모든 계명이 걸려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너희가 너희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몸을 그 사람 대신 불타서 죽을 수 있도록 내준다 할지라도 그 근본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속에 계셨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본능적인, 안주고는 못 견디는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본질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율법을 지킨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거짓말 안하고 도적질 안하고 살인 안하면 율법을 지킨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율법의 껍데기만 말하는 것이지 율법의 중요한 내용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2장 37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9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 

의로움이란?

다시 돌아가서, 의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결과이다, 열매이다. 헬라어에 가면 이 율법의 본질과 그 율법이 이루어진 결과, 실제로 그런 단어들이 헬라어는 세분화되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헬라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겠다. 헬라어에 있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카(Dika)라는 여자 신이 있다. 헬라 신화에 보면 제우스(Zeus)라는 신이 세상에 있는 예쁜 여자와 바람 피워서 낳은 딸을 디카(Dika)라고 한다. 

그런데 이 디카(Dika)는 특징이, 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정확하게 재서 만약에 이쪽으로 더 나왔다고 하면 잘라내는 인정사정이 없는 신이다. 그래서 이 ‘디카(δικη)’라는 말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우리 말도 ‘형벌’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벌을 주는 신이다. 조금만 틀려도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 디카(Dika) 여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인가? 100% 정확한 것이다. 99.9%도 용납이 안 된다. 99.9%라고 하면 모자라기 때문에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형벌이다. 

이 디카(Dika)라는 여신이 행하는 일들, 그것을 ‘의’라고 한다. 그래서 이 디카 여신이 만들어 내는 결과, ‘디카(Dika)’가 완전히 의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라고 할 때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라고 한다. ‘마’는 어떤 열매, 결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게 의롭게 되려면 의의 본질이 있어야 한다. 사랑의 본질이 있어야 한다. 본질이, 종자가 이기심인데 어떻게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그래서 성격, 그것을 ‘디카이오수네(δικαιοσύνη)’라고 한다. ‘수네’ 이것은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근본적으로 의의 본질이 없으면, 본성이 없으면 이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 즉,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디카이오시스(δικαίωσις)’라는 단어이다. 이 ‘시스’는 역시 뒤에 붙는 말로 ‘의롭게 된다’ ‘의롭게 만든다’ 흔히 그 의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그래서 의인화한다, 변한다. 의롭게 변한다는 세 가지 단어를 헬라어는 가지고 있다. 똑같은 동사 ‘디카이오오(δικαιóω)’이다. 그 의가 맺혀진 열매, 사실은 나중에 나오지만 그것이 심판의 대상이다. 심판할 때는 그가 한 행위의 열매를 보고 심판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너희에게 나올 때는 양의 옷을 입고 오지만 속에는 약탈하는 이리가 들었다. 그것이 거짓 선지자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열매를, 행위를 보면 알 것이다.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를 보면 알 것이다. 그 열매가 나쁠 때에는 그것은 분명히 거짓 선지자이다. 겉으로는 아주 겸손하고 사랑스럽게 보이지만, 삶에 나타난 열매가 아니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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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본다. 하나님의 율법은 지킬 수 있는 사랑의 본질이, 본성이 없으면 이 율법은 지킬 수가 없다. 사랑의 본성은 유전자이다. 사랑의 유전자가 없으면 율법은 지킬 수 없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율법의 껍데기는 지킬 수 있지만, 속의 알맹이는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이 없으면 이것은 다 쓸 데 없다고 말씀하신다. 기둥이 없는데 빨랫줄을 만들 수 없고 걸 수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의라고 하는 개념은, 예수님 자신이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율법을 문자로 지키는 의이다. 

로마서 2장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의문’은 ‘글자’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이 의는 하나님께로서 난 의이어야만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은 말한다.

성경구절

  • 신명기 6장 25절
  • 마태복음 22장 37~40절
  • 마태복음 22장 40절
  • 고린도전서 13장 3절
  • 마태복음 5장 20절
  • 로마서 2장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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