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예레미야보다 더 절망적인 환경에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에스겔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을 때, 어쩌면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이미 이혼 한 이스라엘을 그래도 잊지 못하시는, 참으로 죽기까지 사랑하신, 아니 죽음 넘어서까지 그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한 선지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에스겔 37장은 이미 죽어버린 것 같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했다.에스겔이 계시 가운데 본 해골 골짜기에 있던 수많은 해골들은 죽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에게 그들을 다시 살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에스겔의 이야기 가운데서 에스겔 37장의 부활의 사건 앞에 에스겔 36장의 새 언약의 사건이 나타난다. 죽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부활시키시는 새 언약, 이 에스겔의 새 언약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과 더불어서 우리가 정말 자세히 살펴보아야 될 새 언약이다. 이 새 언약은 에스겔 36장 28절에 보면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언약이 완성되었을 때에 그 언약이 체결되고 그것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말씀이다.
첫째로 에스겔 36장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듯이 애굽이 아니고 이제는 바벨론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인간이 하는 일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에스겔의 새 언약의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건들을 볼 수 있는데, 항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이 구별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먼저 에스겔 36장 24절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라고 말씀하신다. 고향 땅으로, 고토로 데리고 들어가시겠다. 이 말씀대로다.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여 내실 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옛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등에 업고 날아오르듯이 내가 너희를 구했다고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19장 4절에 보면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가 데리고 왔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애굽의 어떤 신들도 감히 하나님을 도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다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 애굽의 모든 신들, 태양신을 비롯해서 많은 것들을 신이라고 믿었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가하셔서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신다. 마치 사자나 호랑이나 곰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뛰어봐야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결코 어찌할 수 없다.
우리를 등에 업고 가시는 구원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업어서 데리고 가는 것처럼 그들을 인도하셨다. 아무 신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고 말씀한다. 같은 말씀을 신명기 32장 11절에서 모세가 옛적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추억할 때 같은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데리고 왔다고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사야 63장 9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안고 업고 왔다. 이 놀라운 구원, 하나님이 그들을 직접 어깨에 메고 등에 업고 품에 안고 오셨다는 이야기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회개에 대한 비유를 하실 때에 똑같이 사용하셨다. 그것이 누가복음 15장 5, 6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으러 가서 양을 어깨에다 메고 오는 것이다. 등에 업고 오시는 것이다.
그 똑같은 비유를 주님께서 하고 계신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구원의 절대성이다. 아무도 하나님을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오시는 분은 바로 ‘내가’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구원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예레미야가 울면서 했던 그 마지막 간절한 기도,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에서 예레미야가 마지막으로 통곡하면서 드렸던 기도는 너무나 처절한 기도이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예레미야의 마지막 소원은 그 처참한 멸망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 데리러 오셔서 데리고 가 주시기를, 주께로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하실 때만 우리는 주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지난번에도 그 기도를 읽었지만, 이 예레미야의 기도는 참으로 간절한 눈물어린 기도이다. 예레미야 31장 18절에서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
가끔 비행기를 타는데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비행기 안을 가끔 걷는 분들이 계신다.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저 분이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 가기 때문에 비행기가 가는 것이 아니다. 앉아있든지 걸어 다니든지 상관없이 비행기는 그 사람을 싣고 가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구원을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려서 들은 참 감동적인 예화가 있다. 어느 시골에 어떤 할아버지가 지게에다 짐을 지고 힘들게 가고 계셨다. 그런데 지나가는 트럭이 할아버지가 너무 힘드시니까 차를 세우고 할아버지를 화물칸에 타시라고 해서 탔다. 얼마큼 가다보니까 할아버지가 지게에 짐을 진 채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사가 차를 세우고 다시 “할아버지, 지게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차가 갑니다.” “아닙니다. 태워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제가 어떻게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얘기했다는 재미난 우화가 있다.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다 맡겨야 한다. 우리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죄를 내려놓아야 한다. 주님께서 업으셨다. 업혀서 집에까지 잘 가게 되길 바란다.
키워드 :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하나님, 남편, 사랑, 이스라엘, 아내, 이혼, 바벨론, 포로, 독수리, 비행기, 트럭
성경구절
- 에스겔 37장
- 에스겔 36장
- 에스겔 36장 28절
- 에스겔 36장 24절
- 출애굽기 19장 4절
- 신명기 32장 11절
- 이사야 63장 9절
- 누가복음 15장 5,6절
-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
- 예레미야 31장 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