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부활의 의

by blogstar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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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로마서 4장 22~25절, “4: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바울은 옛날 아브라함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고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라고 말씀한다. 곧 어떤 우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더불어 부활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결론적으로 바울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주님이 죽음에 넘겨지셨고, 우리의 의를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참으로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죄를 완전히 다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죽으심이 증거하고 있고,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죄를 완전히 해결하셔서 죄가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그 죄의 결과이고 열매인 죽음도 완전히 없어져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실제로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심판하시고 완전히 해결하셨다. 그래서 그 완전한 심판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결과로 주님은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의 죄라도 해결 못했다면, 주님은 사망의 밥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다 해결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을 반복한다. 이 말씀은 놀라운 복음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속죄라는 말은 그렇게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헬라어는 ‘루트로시스(λύτρωσις)’라는 단어인데, 그것은 해방이다. 노예를 돈을 주고사서 완전히 영원히 해방시키는 것이다. 다시는 노예가 아니다. 영원한 해방이다. 영어로는 이 단어를 ‘redemption’이라고 한다. 돈을 주고 사서 해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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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완전히 심판했고, 죽음도 동시에 없어졌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셨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당신이 평생 사시면서 또 죽으시면서 이루신 율법의 의로 부활하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다고 말씀한다.

요한일서 2장 1절은 이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라는 말을 요한은 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대언자’라는 말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대언자의 원래 말은 ‘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른다. ‘파라’는 ‘옆에’ ‘클레이토스’는 ‘불려온 자’라는 뜻이다. 옆에 불려온 자, 아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남의 집을 완전히 태워서 없애 버렸다. 적어도 3억짜리 집이다. 그러면 그 돈을 누가 갚을 것이냐? 아버지가 아이 옆에 서서 ‘제가 다 갚겠습니다.’할 것이다.

‘파라클레토스’를 그 당시 쓰던 용어로 ‘법정대리인’이라고 말한다. 법정대리인은 그 사람의 죄를 내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법정에서 다 갚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주로 법정대리인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늘에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자가 되시겠다고 하신다.

왜인가?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영원히 다 갚으셨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공의의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될 우리 죄인들 대신에 이미 우리의 죄 값을 다 갚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법정대리인으로 서계신다.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요한이 말씀한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

그런데 그 대언자를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다. 바로 ‘의’라는 단어이다. 의로우신 대언자,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사실은 우리 한글 성경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보혜사’라는 이름과 같은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내겠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진리의 성령 곧 보혜사라는 표현을 썼다. 이 성령님 또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곁에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를 고발하는 마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자로 오셨다. 법정 대리인이다.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속에 함께 계시는 법정 대리인이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자, 우리를 변호하시는 자이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자,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의롭다고 변호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법정대리인이다.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좀 어려운 말이다. 한자로 쓰면 뜻이 조금 더 낫지만 일반적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의라는 단어가 나온다. 예수님이 ‘파라클레토스’ 법정대리인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자이다. 자신은 어떤 자신인가? 이 의롭다고 하는 말은 이사야 53장 10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실 것을 말씀하셨고, 이사야 53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나의 종이라고 표현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하리라고 말한다.

나의 종, 바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주인이 시키는 대로 십자가에 희생을 당하신, 우리의 죄 값을 갚으신 그분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리라. 여기 지식이라는 단어는 머리의 지식이 아니다.

히브리말에 이 ‘지식(다아트)’이라는 말은 ‘하나 된다’ ‘동침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기희생의 마음, 자식들을 어떻게 하든지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그 아버지의 뜻과 하나 되신, 동침하신,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자식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하나가 되셨던 그 지식이다. 히브리어로 ‘야다(ידע)’라는 ‘안다’는 동사의 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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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그 하나님과 하나 되는 그 지식이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 됨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자기희생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재산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하나 되는 그분의 사랑, 희생의 마음과 하나 되셨던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쳤다고 말씀한다.

이 빛이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예수님의 얼굴에서 나타나셨던 자기희생의 사랑의 빛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자기희생의 사랑과 하나가 되셨던 바로 그 빛이 희생당하시던 우리 주님의 얼굴에서 비취던 빛이다. 그 빛으로, 그 하나 되는 지식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겠다고 말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간절한 소원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없애시고, 의롭게 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어찌 우리가 본능적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오늘 우리 인간 부모들에게 주셨던 그 하나님의 유전자, 본능적 사랑의 유전자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겠는가!

십자가도, 채찍도, 대못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우리 주님의 눈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밖에 보이지 않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분은 십자가로 가셨고 그 처참한 죽임을 당하신다. 그것이 그 분의 의인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시는 것뿐 아니라 우리 자식들에게 당신이 이루신 그 의를, 율법의 의를, 율법의 요구였던 본능적 사랑을 다 이루셔서, 그 의를 다 이루셔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놀라운 사랑이다! 이 사랑이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머물게 되기를 바란다!

키워드 : 부활, 의, 로마서, 바울, 아브라람, 믿음, 십자가, 대언자, 보혜사, 예수, 성령, 지식, 본능적사랑

성경구절

  • 로마서 4장 22-25절
  • 히브리서 9장 12절
  • 요한일서 2장 1절
  • 요한복음 14장 16절
  • 이사야 53장 10,11절
  • 고린도후서 4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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