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님께서 주셨는데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의, 즉 하나님의 의이다. 제품이 국산이 아니라 미제라는 것이다. 옛날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미국서 만든 미제라면 뭐든지 정말 다 좋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제 세탁기, 미제 냉장고를 부자들이 찾아서 썼다. 제품이 다르다. 그런데 이 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만든 인간의 의가 있고,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의가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의를 절대로 만들 수 없다.
지난시간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의는 본성적인, 본능적 사랑이신 하나님이 그 사랑을 이루셨을 때, 그것을 완성하셨을 때 그것을 의라고 표현했는데, 우리 안에 그런 본성이 없는데 어떻게 본능적인 사랑의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에게 만들라고 하지 않는다. 네가 만들 수 없다.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럼으로 이 하나님의 의, 본성적, 본능적 사랑의 의를 내게 달라고 요구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심판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마태복음 7장 22절,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시는가? 23절,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 하신다. 인간의 의는 불법이다. 인간이 내가 무엇을 했고, 내가 무엇을 했고, 내가 무엇을 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불법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의
빌립보서 2장 13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의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의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의로운 생애를, 이렇게 헌신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 때 주님은 한마디로 그것은 불법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한 일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밖에서 행하시는 일이 우리의 구원이다. 많은 잘못된 신앙, 특별히 기독교의 잘못된 신앙이 바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결단코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이미 근본적으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자아사랑의 본성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기심과 교만의 때가 묻지 아나한 종교적 행위는 아무것도 없다. 왜 예배를 드리는가?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이기심이다. 왜 예수를 믿는가? 내가 구원 얻기 위해서이다. 이기심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죄로부터 벗어난 참으로 용서받은 사람들은 결단코 자기 목숨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기가 얻은 구원마저도 얼마든지 버리는 것이다. 죄인들의 죄와 교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본능적인 사랑의 의
부모는 자식의 입에다 다 집어 넣어줄 때에 진정으로 행복하다. 자식의 행복만이 유일한 자신의 행복인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자식이 잘되고 행복하고 죽지 않고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 부모이다. 그것이 본능적 사랑이다.
오래전에 한 신문에서 미국 사람들이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사지가 다 비틀어진 지체 부자유자들, 정신 장애아들을 데려다가 입양하고 그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그것도 몇 명씩이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부부간에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아이들을 돌보는 의사 부부를 비롯해서 참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돈을 많이 버는 의사의 직업도 포기하고, 은행의 간부로써 꽤 많은 봉급을 받던 것들을 다 포기하고 부부간에 그 정말 희망 없는 아이들을 그렇게 돌보고 사랑하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들 속에 하나님이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목사로써, 그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과연 그리스도인가? 과연 나는 예수님의 본능적인 사랑의 마음을 받았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기억해야 될 사실은 성경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본능적 사랑의 의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다시 성경 고린도전서 1장 30절, 사도 바울은 이 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여기 성경은 명백히 말하기를 우리의 의는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예수님이다! 우리는 백 번 죽었다가 부활할지라도 이 의, 본능적 사랑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
그리스도 우리의 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셨다. 그가 어떻게 우리의 의가 되셨는가? 이것은 놀라운 이야기이다. 이것이야말로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천사가 우리의 장부를 펼칠 때에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 용서되었다고 기록되고 한 쪽에 명백하게 아무개의 의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내 인생의 기록에 내 죄는 없어지고 예수님이 산 인생이 내 인생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한다. 가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내 죄 많은 인생의 기록에 예수님이 그 완전한 사랑을 이루신 그 의가 내 것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 우리의 의! 이것은 참으로 성경의 가장 놀라운 이야기인 것이다.
키워드 : 그리스도, 하나님의의, 본능적사랑, 고린도전서
성경구절
- 마태복음 6장 33절
- 마태복음 7장 22,23절
- 빌립보서 2장 13절
- 고린도전서 1장 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