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라는 표현
사도행전 5장 30절, 31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회개를 보았다. 시편 51편 1절 말씀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이런 표현들이 나타난다. 다윗이 회개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끌어 그를 회개케 하신 것이라고 로마서 2장 4절에 말씀한다. 이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 다시 한 번 복습을 하자면 이 ‘인자’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히브리말에 가장 많이 쓰인 ‘헤세드(chesed חֵסֵד)’라는 단어이다. ‘인자’라고 쓰인 말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이다. 헤세드, 영양제로 말하면 종합비타민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다 녹아 있는 것이다. 친절, 사랑, 용서, 불쌍히 여김 모든 뜻이 다 있다.
회개와 죄 사함을 주셨다
자비는 이미 말씀드렸지만 ‘레헴’이라는 엄마의 자궁이라는 말과 형제간 말이다. ‘라함’이라는 단어, 엄마의 모성애적인 사랑, 그것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한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무엘하 12장 13절 말씀가운데서 내가 이미 네 죄를 사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한다. 그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다윗이 의지했다. 로마서 2장 4절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를 이끌어 회개케 하심을 어찌 모르느뇨”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를 이끌어가는, 실제로 이끄시고 그를 하나님의 용서의 가슴으로 데리고 가시는 이가 지금 우리가 본 사도행전 5장 31절에 나타난 성령이시다. 여기 분명히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셔서 임금과 구주가 되셨는데, 그 임금과 구주가 되셨다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정권을 가지시고 통치하시는 통치의 표시로 내려주신 것이 성령이다. 성령을 내려 보내신다. 그래서 회개와 죄 사함을 주셨다.
우리말은 ‘받게 하시기로’라는 말을 썼는데 원래 헬라어로 ‘주시다’는 말이다. 영어는 ‘주신다’고 번역했다. ‘성령을 부으셔서 회개와 죄 용서를 주셨다.’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이다. 다윗이 시편 51편에 했던
그래서 죄를 용서하시는 자, 법정대리인이라고 표현하는 보혜사라는 단어는 성령에게도 쓰이고 동시에 예수님에게도 쓰였다. 이 보혜사라는 단어는 이미 여러 차례 공부했다.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당시에 자식의 모든 문제를 다 갚아주는 법정 대리인 된 부모님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보혜사가 분명히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성령이시고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보혜사, 법정대리인이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보혜사가 또 한분이 계시는데 그것은 요한일서 2장 1절에 “우리가 만일 죄를 범하면 예수님께서 하늘 법정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자가 되신다”고 표현했는데 ‘대언자’라는 말이 ‘보혜사’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파라클레이토스’이다. 법정대리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회개 시키시는데 다윗을 실제로 예수님의, 하나님의 용서의 가슴으로 데리고 가셔서 법정대리인 노릇을 하시는 분은 누구이신가? 성령이시다. 성령님이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 용서 그것을 소개하고 예수님 품으로 데리고 가시는, 실제로 회개시키시는 분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사도행전 5장 31절, 성령께서 오셔서 회개와 죄의 용서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시편 51편에 다윗의 회개는 다윗의 회개로가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다윗 혼자한 회개가 아니다. 성령께서 다윗의 마음을 붙잡으시고 그를 이미 용서하셨다는 말씀으로 데리고 간다. 다시 말한다, 사무엘하 12장 13절, 다윗이 자기 죄를 인정하자마자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말씀한다. 그 용서의 가슴으로 성령이 이 다윗을 데리고 가시는 것이다. 지난시간도 공부했지만 다윗이 마지막으로 구한 것은 시편 51편 11절에 주의 성신을,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아달라고 탄원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셔서 자기를 구별하여 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 아버지와 똑같은 성령, 또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똑같은 마음을 가지셨던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의 가슴으로 데리고 갈 존재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하심
이 다윗의 회개를, 성령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인자와 자비 가운데로 데리고 가신다. 이것이 1번이다. 2번은 용서받은 다윗이 그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맑고 깨끗한 죄 없는 마음과 영을 구한다. 죄 없는 순결한,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같은 순결의 영, 그 순결의 마음을 구한다. 이것을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 앞에 탄원한다. “하나님이여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이다. 다시 얘기한다. 그 용서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가슴에 계셨던 그 순결의 깨끗한 영의 역사가 다윗 안에 똑같이 일어났다. 그래서 다윗도 자기를 용서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예수님의 가슴에 있었던 그 깨끗한 정한 마음과 영을 구한다. 여기 특별히 ‘정직한 영’이라고 우리말로 번역 했다. 이 시편 51편 10절에 이 ‘정직하다’는 말은 본래 뜻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그런 뜻이다. 이 영은 분명히 본성이다. 다윗이 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영, 그 깨끗한 마음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의 본성을 구하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사랑과 그 깨끗한 마음을 하나님, 깨끗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계셨던 성령이 아니면 보여줄 존재가 없다. 다윗이 구한 것은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로 그 영, 그 정신, 그 마음 그것을 구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웃만을 사랑하시던 그 아름다운 사랑의 영을 구하고 있다. 그 마음을 구하고 있다.
마치 집에 돌아오는 탕자가 누가복음 15장 21절에 했던 말씀과 똑같은 말이다. 이제는 제가 즐겨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 종 같은 아들이 되겠다고, 100%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가겠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하겠다는 이야기이다. 흔히 효자들은 그 부모의 종과 같이 부모를 사랑한다. 자기 뜻을 내놓지 않는다. 부모의 뜻을 따라간다. 종이다. 우리 부부간에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정말로 기쁘게 해주고 내 뜻을 접고, 뒤로하고 정말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사는 부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 분명히 하나님의 가슴속에 계셨던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가슴속에 계셨던 성령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다. 이런 마음을 줄 수가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정한 마음, 정직한 영 속에 바로 성령이 오시는 것이다. 이 정직한 영과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는 이유는 성령을 모셔 들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성경구절
- 사도행전 5장 30절로 31절
- 시편 51편 1절
- 로마서 2장 4절
- 사무엘하 12장 13절
- 로마서 2장 4절
- 사도행전 5장 31절
- 요한복음 14장 16절
- 요한일서 2장 1절
- 사도행전 5장 31절
- 사무엘하 12장 13절
- 시편 51편 10절로 11절
- 누가복음 15장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