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의 이유
시편 51편 11절 말씀, “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성신, 성령, 이스라엘 말로 ‘거룩의 영’ ‘루아흐 하 코데쉬’ 이 거룩, 구별, 구별의 영이 구별이라는 단어 ‘코데쉬’ 이것은 ‘구별하여 바친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다. 구별하는, 거룩하게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구별의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성경 에베소서 5장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자신을 구별하는 이유는 주기 위해서인데 그 이유는 사랑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공부했듯이 요한복음 17장 19절, 주님께서 “내가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똑같다. 이 거룩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구별하여 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이다.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관계를, 부모와 친구와 형제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결혼하는 날, 자신을 구별해서 신부에게 자기를 준다. 구별 곧 거룩의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구별한다.
구별의 목적
두 번째, 구별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하는가? 그것은 지금 보신 이 말씀 그대로 자신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히 통째로 주기 위해서는 모든 다른 관계를 단절, 끊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혼관계는 소위 거룩의 관계이다. 그래서 흔히 주례하시는 분들이 이 서약을 할 때 반드시 묻는 말이 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여자를 버리고 혹은 모든 남자를 버리고 이 사람에게만 자신을 구별하여 바치겠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 그래서 거룩의 서약이라고 흔히 부른다. 이 거룩의 서약은 자신을 주기위해서 구별한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로 이 구별의, 거룩의 결과가 있다. 그것은 에베소서 5장 25절과 26절에 보면 26절에 성경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그리고 끝나지 않았다. 분명히 에베소서 5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결론은 끝에 가면 이 거룩하게 자기를 완전히 구별해서 바쳤을 때 그 거룩의 사랑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상대방도, 신부도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그 거룩하게 주시는 사랑에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사랑
성경에 이 거룩한 사랑에 대한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사단에게 몸을 바쳤던, 마귀에게 몸을 바쳤던 창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신 사랑, 십자가에 자기 몸을 다 바치신 그 사랑을 받아들인 이 창녀가 그 사랑에 녹아서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거룩한 여자로 바뀐다. 다시 말하지만 거룩은 구별하여 바치는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이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야기와 복음이 전해지는 어디든지 가서 꼭 이 여자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왜냐하면 이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은 진정한 신앙, 예수님께 대한 구별된 사랑이 무엇임을 보여준 표본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7장 38절에 보면,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며” 이 여인이 예수님이 오셔서 식사하시는 집에 몰래 들어왔다. 뒤로 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잡혀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여인은 울기 시작했다. 자기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그 주님의 죽으심에 이 여인은 한없이 울었다. 끝내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준비해 오지 않았던 수건, 그 자기 머리털을 내려서 눈물로 범벅된 주님의 발을 씻고 그리고 자기가 가져온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는다. 눈물, 머리털, 향유 그것은 이 여인에 대한, 자기를 나타내는 자기를 다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표시였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는가? 자신을 용서하신 사랑, 예수님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서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신 그 용서의 사랑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주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기는, 다 바치는 믿음으로 살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그대로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7장 47절에 이 이야기를 분명히 하셨다. “이러므로 내게 네가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이 시편 51편에 나타난 이야기가 동일한 이야기인데, 이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 또한 똑같은 죄인이었다. 죄에 팔린 노예가 되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남의 아내를, 젊은 아내를 뺏어다가 그 남편은 죽이고 그 여자와 더불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죄악에게 몸을 바쳤던 이 다윗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용서하시고, 다시 한 번 그에게 삶의 기회를 주셨을 때, 이 다윗이 그렇게 많이 울고 자신을 주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사람이 되었다. 바로 이 다윗이 한 기도는 놀라운 기도이다. 다윗이 시편 51편 11절에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미 그것은 다윗이 자기만을 위해서, 자기만을 사랑하시고 자기만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치셨던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 사랑을 그가 보았고 누렸고 경험했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사랑의 하나님을 그가 놓칠 수 없었고, 자기만을 사랑하신 그 사랑의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떠나간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서 그가 울면서 이런 기도를 한 것이다. 구약에 나타난 첫 번째 성령이란 단어이다.
구약성경에 성령이란 말이 세 번 나온다. 그중에 첫 번째 말이다. 그래서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자기에게 어떤 사랑을 퍼 부으셨는지, 오직 나만을 사랑하시고 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의, 나에게만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가 이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그에게 왔고 그것을 누렸기 때문에, 그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용서라는 물건을 구한 것이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자신, 자기만을 위하여 구별하여 자기를 주셨던 그 하나님 자신을 곧 자기만을 위해 거룩히 구별하여 자기를 바치신 영이셨던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용서라는 물건만 구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회개가 아니다. 그런데 아들, 다윗 밖에 모르셨던 그 아버지 하나님을, 그 영을, 성령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지어서 부모님과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할 때, 결론은 우리가 다시 부모님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게 진정한 회개이듯이 다윗은 그런 회개를 경험한다.
성경구절
- 시편 51편 11절
- 에베소서 5장 25절
- 요한복음 17장 19절
- 에베소서 5장 25절로 26절
- 누가복음 7장 38절
- 요한복음 7장 4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