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다양한 의미들
두 번째로 이 영이란 말이 쓰인 예는 천사도 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바람’이라는 말로 시편에는 번역하고 있다. 여기 왜 하나님이나 천사를 영, 바람이라고 표현했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나 천사는 아무데나 계신다. 어디든지 가실 수 있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소위 한자로 그것을 편재, 어디든지 계신다. 편재 하신다는 말을 하기위해서 이런 표현들이 기록되어있다고 본다.
시편 139편에 보면, 시편기자가 하늘 끝에 가든 바다 끝에 가든 거기 하나님께서 계신다. 마치 공기 속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내 전후를, 내 머리를, 전체를 안수하신다. 보호하고 계신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소위 편재하시는,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천사도 역시 어디든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니신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 영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우리가 창세기 2장 7절에서 봤듯이 ‘사람의 생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기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바람’이라고 ‘생명의 숨’이라고 번역되어 쓰인 ‘루아흐’가 아니고 이때는,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숨이 생명의 숨, 생기, 기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느샤마(neshamah נְשָׁמָה)’라는 히브리말이다. 뜻은 똑같이 ‘생기’이다. ‘바람’이다. ‘숨’이다.
그런데 ‘루아흐’나 ‘느샤마’는 같은 바람 혹은 숨이란 뜻이지만, 우리말에 달걀, 계란 같이 똑같은 말이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데 이 ‘느샤마’는 숨 중에도 특별히 이 단어 이 ‘느샤마’가 유래했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동사가 ‘나샴(nasham נָשַׁם)’이라는 동사이다. 이 ‘나샴’이라는 동사가 이사야 42장 14절에 쓰였다. 한번 딱 성경에 기록 되어있다. 거기에 보면 해산하는 어머니가 “그 숨을 헐떡이며”라는 말이 나온다. 그 단어이다. ‘헐떡이는 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해산하는 숨, 아마도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 7절에 사람을 만드실 때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기대 속에서 아담 속에다가, 코에다가 숨을 불어넣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담을 창조하시고 정말로 이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창조되는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흥분의 숨이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아마도 해산하는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면서 비록 고통 중에서이지만 어떤 기대와 흥분 속에서 아이를 낳는 그런 숨에 비유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두 단어는 서로 번갈아서 사용되어졌다. 숨이란 말로. 그래서 이 ‘루아흐’라는 단어를, 숨이라는 단어를 전도서에 보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번역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쓰인 이 ‘루아흐’라는 말이 ‘바람’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2:11)고 말씀한다. 동시에 이 ‘루아흐’라는 단어 전도서 3장 19절에 보면 “동일한 동물이나 사람이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호흡’이라고 번역한다. 똑같은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한절을 넘어 21절에 가면 말이 이상한 말로 바뀐다. ‘혼’(魂)이라는 말로 바뀐다. 똑같은 단어인데 왜 혼이라고 번역 되었는지 번역하시는 분들의 생각의 차이이겠지만 또 이 말이 같은 전도서 12장 7절에는 ‘신’이라고, ‘영(靈)’이라고 번역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신(神)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정말로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 주신’이라는 말을 붙여 놨다. ‘그 주신 하나님께로 간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분명히 창세기 2장 7절에 ‘생기’이다. 그러니까 가는 것도 생기가 가야 된다고 번역하는 것이 마땅한데,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은 다음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분들이 귀신이 간다라고 번역을 해놓은 것은 우리가 많이 생각해 봐야 될 번역이다. 분명히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 간다”고 말하고 있다. 주신 것이 분명히 ‘생기’이지 영혼이 아닌 것이다.
그 단어자체가 숨이라는 본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이것은 상당히 심각하게 고려해야 될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분명히 생기이다. 생명의 숨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 ‘생기’라는 말, ‘생명의 숨’ 이것도 ‘영’, 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네 번째, 스가랴 12장 1절을 보면 “사람 속에 영을 빚어 넣으셨다”고 말한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 속에 스가랴 12장 1절에 우리 육체 속에 영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을 빚어 넣으셨다. ‘영을 지으셨다’고 되어있는데 여기 ‘지었다’는 ‘야짜르’라는 히브리어 동사이다. 이 ‘야짜르’는 우리가 도자기를 빚을 때 흙을 가지고 빚는다. 이렇게 주물러서 만든다는 뜻의 동사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만든다는 동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 속 어느 부분에, 아마도 뇌 속이라고 본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을 창조해 놓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숨이다. 다시 말해서 숨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숨을 빚어 넣으셨다. 우리 육체 속에 있는 숨 말고,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의 어떤 기능을 우리 안에 넣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섯 번째,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이 하나 되었을 때, 그것을 또한 영이라고 표현했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표현하신다. 로마서 8장 9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다. 그 말씀가운데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을 모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성령이 안 계실 때는!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여기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그것을 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 영, 같은 말이다. 그래서 바울이 사용하는 ‘영’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다양한 단어인 것을 알아야 한다. 구약에 이미 말씀하셨던 말씀을 헬라어로 표현한 것뿐이다. 사상은 구약의 사상이다.
여기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라고 말한다. 그때 말한 육신이라는 개념은 이미 창세기 6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6장 3절에 보면, 옛날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사단의 영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여기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 6장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과 함께 계시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여기 육체라는, 육신이라는 개념은 사람의 영광, 사람의 영이 마귀의 영에게 자기를 바쳤다. 그래서 사단과 영이 하나가 된다. 이때 이것을 ‘육체’라고 불렀다. 바울이 로마서 8장 9절에 “너희가 육체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고 말한 같은 육체이다. 육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바싸르’ ‘살덩어리’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영이 마귀의 영과 하나가 되면 그것을 육체라고 불렀다. 대신에 우리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가 되면 이것을 영이라고 불렀다. 영적 상태를 가리킨다.
어쨌든 이 영이라고 하는 단어가 대단히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영이란 단어가 나올 때 앞뒤 문맥을 잘 봐서 그 말이 본래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아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헬라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그래서 “영과 혼과 몸이” 하는 그 말도 헬라적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 한다. 아니다. 우리가 헬라사람들이 썼던 그 단어들을 히브리말로는 어떻게 썼는지 본래 구약성경에는 어떻게 그 단어들을 썼는지를 확인해보면 답이 정확하게 나온다.
다시 말하면 헬라의 언어를 썼을 뿐이지 그 속의 사상과 내용은 구약의 히브리 사상이라는 것 이다. 그 말을 빌려 쓴 것뿐이다. 그것들을 우리가 계속해서 다음시간에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다.
성경구절
- 히브리서 1장 14절
- 시편 139편
- 창세기 2장 7절
- 이사야 42장 14절
- 전도서 2장 11절
- 전도서 3장 19절
- 전도서 3장 21절
- 전도서 12장 7절
- 스가랴 12장 1절
- 고린도전서 6장 17절
- 로마서 8장 9절
- 창세기 6장 3절
- 로마서 8장 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