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거짓말이 초래한 도덕의 붕괴
거듭 말씀드리지만, 믿음은 분명히 맡기는 행동이다. 플라톤이 유명한 이야기를 하는데 육체로는 가깝게 하지 말고 영혼으로만 사랑하자, 마음으로만 사랑하자. 소위 영어로 말하면 ‘Platonic love’라는 플라톤 식 사랑이다. 그것이 결국 기독교회에 잘못 들어와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결혼을 못하게 함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게 해서 생존본능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다른 쪽으로 그것이 잘못 표출이 되고 결론적으로는 죄를 짓게 되고 죄의식 속에서 평생 사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창세기 1장 26절에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자 하셨고 그 우리의 형상 속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어지는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 그 속에는 남자와 여자가 들어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래서 아담에게서 뺀 갈비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다시 결혼시키셔서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고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꽃과 나무와 풀과 동물들만이 아니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사단은 인간이 육체로 하는 것은 더러운 것이니까 금한다, 더러운 것이니까 못하게 하는 것이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귀신의 가르침이다. 오랜 동안 사단에게 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로 하는 어떤 부부생활도 아주 부끄럽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마귀가 만들었다.
사단이 퍼뜨린 잘못된 '믿음'
믿음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사단이 머리로만 잘 믿으면 된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 말은 일부는 맞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틀린 이야기이다. 사단 식의 믿음, 머리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특별히 소위 신앙고백이라는 것이, 성경이 말씀한 대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그것이 믿음이지만 그렇게 말할 때에는 자기가 믿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는 믿음이 근거가 되어서 그렇게 신앙고백 곧 맡기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결혼식 할 때 소위 서약을 하는 시간이 있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버리고 이 여자에게만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겠는가, 맡기겠는가? ‘예’라는 대답만 하고 마음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그리워하고 간음한다면 그것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다 통째로 맡기는 그 행동을 보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꾸 반복하는 이유는 우리 머릿속에서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완전히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야고보서 2장 19절, 마귀도 믿고 떤다는 말이 나온다. 마귀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마귀의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믿음이다. 그냥 머리로 알고 인정하는 믿음이다. 이것도 사람들이 ‘믿음’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때문에 마귀도 믿고 떠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은 마귀가 하나님께 자기를, 마음을 맡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머리로, 혹은 입으로 인정하는 믿음이다.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인정이지 성경의 표현대로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인정일 뿐이다. ‘믿음’은 ‘맡기는 것’이다.
오늘 날 사단이 이 기독교계 안에서 성공했다. 성공한 것은 이 입으로 믿습니다, 머리로 확실히 믿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치는데 마귀가 성공을 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된, 머리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그 ‘믿음’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입으로 고백한 믿음만이 아니다.
믿음은 행동이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12년을 혈루증, 피를 쏟는 병을 가진 한 여인, 그 여인이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고 고백을 해서 예수님이 고쳐주셨는가?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럴 때 그 여인이 나타낸 믿음이 무엇인가? 여인이 나타낸 그 믿음은 분명히 내가 예수님께로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믿음, 그것으로 끝났는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신뢰했는가? 그리고 예수님께 가지 않았고 예수님에게 자기를 혼신을 다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은 그런 믿음이었다면 과연 그 말이 나왔을까?
다시 이야기 한다. 서울 아산병원에 가면 그 유명한 암 치료를 하시는 박사님이 계신다. 그분께로 가서 누구도 낫고, 누구도 낫고 누구도 나았다 그러니까 가면 틀림없이 낫는다. 그렇게 마음으로 믿었다. 확실히 믿었다. 그리고 가지 않았다. 아니, 아산병원 입구까지 가서 병원에 들어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무엇인가? 맡기지 않은 것이다. 믿음이 아닌 것이다.
마태복음 8장 1절로 3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산상수훈을 설교를 마치시고 내려오니까 사람들이 좇아와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에게 옹위되어 어딘가 가고 계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는 쪽으로 같이 따라 갔다. 그런데 예수님이 한 나환자, 한센 씨 병에 걸린 한 가슴 아픈 영혼이 있는 곳 가까이 갔다.
이때에 이 나환자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주시는 확신이 그에게 들어갔다. 나도 예수님에게 가면 나을 수 있겠다. 그는 사람을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고 뛰어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던진다. 자신을 완전히 맡긴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고백을 한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했다. 그것이 전부인가? 아니다, 자기 몸을 던진 것이다.
12년을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똑같다. 마음으로 믿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말했다. “그 옷 가에만 만져도 내가 나을 수 있겠다” 그리고 끝났는가? 아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남자들의 그 억센 다리 틈을 비집고 예수님 있는 쪽으로 가까이 기어가서 예수님에게 자기 몸을 맡긴다. 그때에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무엇인가? 머리로 믿은 믿음인가? 입으로 고백한 믿음인가? 아니다, 자기를 완전히 맡긴 믿음이다. 그때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입으로는 고백하고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맡기지는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이 무엇이라 하시겠는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아니다, 맡길 때만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
성경구절
- 창세기 1장 26,27,31절
- 야고보서 2장 19절
- 마태복음 9장
- 마태복음 8장 1,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