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바울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또 한 사람의 거듭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다. 예수님과 같은 정신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빌립보서 3장 6절에 예수님 만나기 전에 내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증언한다.
그 율법으로 흠이 없도록 살아온 이유는 자기를 위해서였다. 자기가 의인중의 의인이요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으로 사람 앞에 나타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가 문자적 율법을 지킨 이유조차도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에 의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가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만난 다음에 로마서 7장 18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문자적 율법, 유대인들이 만든 613개의 법을 다 지켜서 그는 율법으로 흠이 없었던 사람이지만 율법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동기와 정신이 자기를 사랑하는 죄에 뿌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선한 것이 없다고 말했을까? 그의 동기가, 그의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능적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희생이 아니며, 자기를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문자적으로나 마음을 다해 다 지킨 이유는 자기가 죄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시기 위하여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삶의 목적이 다른 것이다. 동기가 다른 것이다. 자기를 희생시키기 위해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제물로 바치시기 위해서 그는 그런 삶을 사셨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가 없다고 말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 자기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가 에베소에 잠깐 머무는 동안에 에베소 장로들이 그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눈물 흘릴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 20장 23절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 속에 예수님이 계셨다. 십자가가 보였고 채찍이 보였고 대못이 보였다면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보인 것은 우리밖에 보인 것이 없었다. 영원한 죽음 속에, 영원한 죄 속에 죽어가는 우리들 밖에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바로 그 정신, 그 유전자를 바울 속에 예수님이 넣어 주셨다.
예루살림을 향하는 바울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간다. 그에게는 예수님처럼 죽어가는 영혼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울은 훗날 기록하기를 로마서 9장 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했다.
여기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치지 않는 고통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인 정말로 철면피 같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유대인들 곧 저주받아, 심판받아 마땅한 자기 동족, 친척을 구원하는 일에 그는 그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 정신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가슴에 있는 정신이다.
그가 분명히 3절에 말씀한 것처럼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나는 죽을지라도 그들이 구원 얻기를 바란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랑은 막을 수 없고 말릴 수 없다. 죽음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만을 바라보시고 오셨던 그 사랑은 무덤을 터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무덤이 열린 것이다. 그 사랑은 이겼다! 죽음을 이긴 것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8장 38, 39절 이 말씀하기 전, 앞에서 했던 말 그대로 그는 자기정신이 아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기 동족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사랑이 이겼다. 이 정신, 이 종자, 이 유전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전자이다. 우리가 이 유전자를 받지 않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절대로 이렇게 살 수 없다. 이것은 자동이다. 이렇게 안하고는 못 견디는 것이다. 본능적 사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심과 자기사랑에 미친 우리를 주님은 가슴에 묻고 용서하고 가셨다. 말없이 용서하고 묻고 가셨다. 그 사랑이 우리 속에 들어 올 때에, 그 말없는 사랑이 우리 이기심과 자기사랑을 녹여버릴 때에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자로 다시 거듭날 수 있다. 죽지 않으면 절대 다시 태어날 수 없다.
거듭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용서하신 우리 주님의 가슴속으로 들어가서 주님, 나는 아무리 회개해도 안 됩니다. 내 이기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독사의 종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신앙마저도 나를 위해서 하는 이 독사의 종자를 받아주십시오, 하고 자신을 맡길 때에, 소위 믿을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보다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다시 한 번 분명히 얘기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우리를 가슴에 묻고 돌아가신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믿든 안 믿든, 회개를 했든 안했든 상관없다. 자식이 반성하고 회개해서 부모가 그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본능적인 사랑은 자식의 형편과 전혀 상관없이 자식의 모든 것을 가슴에 묻는다. 용서하고 사랑한다. 그것을 철이 들어서 자식이 깨달을 때에 자신의 죄가 녹아지고 그 부모의 사랑의 가슴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데리고 십자가에 가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어디까지 어떻게 용서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실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사랑에 자신을 맡길 때만 우리는 거듭날 수 있다.
오늘 우리 가슴속에서도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죄(자기사랑, 이기심, 욕심 등)를 넉넉히 녹여버리고 자신을 영원히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우리를 다시 재창조 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키워드 : 거듭남, 바울, 로마서, 자기사랑, 이기심, 죄, 그리스도의정신
성경구절
- 빌립보서 3장 6절
- 로마서 7장 18절
- 로마서 14장 8절
- 사도행전 20장 23,24절
- 로마서 9장 1-3절
- 로마서 8장 38,3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