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신구약을 통 털어서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타난다. 신약성경에 있는 말씀, 회개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요 선물이라는 사실을 사도행전 11장 18절에서 먼저 본다.
로마의 장교였던 백부장 고넬료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다. 나중에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앞에서 그 회개의 보고서를 내 놓을 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거듭 확인한다, 회개는 돌아가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목자가 양을 업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지 양이 자기 발로 스스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목자가 찾아오지 않으면, 등에 업고 돌아가지 않으면 양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이 회개는 ‘돌아감’이다. 그것은 선물이다. 비행기가 우리를 실어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업으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 놓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인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선물이다.
계속해서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도 “혹 하나님이...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우리가 눈물 흘렸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그 사랑에, 그 용서에 우리의 마음이 녹아져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 사도행전 5장 30, 31절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는데 임금과 구주가 되시면서 이 땅의 교회와 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으로 등극하신다. 그때에 그가 주시는 선물이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 받아서 주신다고 성경은 기록하지만 그가 성령을 보내시는데 그 성령이 가져 오시는 선물이 있다.
그것을 사도행전 5장 30, 31절에 말씀하시기를 “회개와 죄 사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회개와 죄 사함은 분명히 우리 한글 번역은 ‘받으려고’라고 번역했는데 본래 헬라어 본문은 ‘주시려고’라고 되어 있다. “회개와 죄 사함을 주신다” 영어 번역은 실제로 ‘주신다’라고 번역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회개, 곧 잘못을 뉘우치고 울고 불며 하나님 앞에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비는 회개는 사실은 성경에 있는 회개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그렇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회개는 우리가 다 할 수 없다. 자기의 죄를 다 깨닫고 그 죄를 다 용서 받으려면 우리는 천년을 회개해도 다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악의 뿌리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 죄의 실체를, 본체를, 뿌리를 알고 그 죄 때문에 통곡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소위 우리가 말하는 회개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이유도 필요도 없는 분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의 죄를 지셨다. “우리의 죄가 되셨다”고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말씀한다.
그가 우리의 죄가 되시고 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셨을 때에 그는 돌아가셔야만 했다. 영원히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그래서 그가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할 이에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눈물로 통곡으로 자기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신 것이다. 그가 우리의 죄 짐을 지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개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할지라도 회개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개라는 생각으로 말할지라도 회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저 수박 겉핥기식의 회개는 할 수 있다. 문자적인 율법에 매달려서 거짓말 하고 도둑질 하고 간음한 죄들은 우리가 혹 회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성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죄의 뿌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매가 무서워서 벌이 두려워서 지옥에 갈까봐 회개한다. 그 벌을 면하기 위해서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그 죄의 뿌리는 분명히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자기가 벌을 안 받고 자기가 어떻게든지 편하고 자기가 어떻게든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자기 사랑의 정신에 의해서 회개라는 것을 하고 있다. 그것은 죄의 뿌리, 죄의 진짜 본체를 드러내서 용서받기를 원하는 그런 회개가 아니다.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회개도 신앙도 자기를 사랑하는 근본 동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용서받고 구원 얻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멸망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보면 동일하게 그들은 자기들이 당할 형벌과 죽음을 앞에 두고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이를 갈고 운다고 말씀하고 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42절 말씀 가운데 보시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통곡을 하는데 자기가 당하는 고통과 자기가 당하는 죽음 때문에 통곡을 하는 것이다. 여전히 지옥 속에서도 그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그 죄를 결코 놓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으시면 서도 자기가 당하는 죽음과 고통을 염려하지 않으셨고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끝까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하시며 돌아가셨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회개할 수 없다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 예레미야가 멸망당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예레미야가 통곡하며 한 기도이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여기에 돌이켜 달라는 ‘돌이키다’는 말이 ‘회개한다’는 ‘슈브’라는 동사이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여기 예레미야가 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하는 기도는 “우리는 스스로 돌아갈 수 없사오니 주께서 우리를 돌이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를 양으로 비유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다. 양은 길을 잃으면 스스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18절에도 예레미야는 통곡하며 이런 기도를 드린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그렇다, 돌이켜 주실 때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목자가 찾으러 와서 양을 업고 집으로 돌이켜 가실 때만 양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돌아가는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를 찾으려 오신 목자의 은혜로 우리는 집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내가 회개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내게 용서와 은혜라는 물건을 주신다. 그래서 마치 회개가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인 것처럼, 돈 주고 물건 사는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니다.
예를 들어서 세례(침례) 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백성들의 죄를 견책할 때는 이미 그들이 죽어 있기 때문에 죄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지 실제로 하나님의 용서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이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다. 로마서 2장 4절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엄밀하게 말하면 탕자가 집에 돌아간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탕자를 집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술에 취해 있을 때, 여자들의 품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생각에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없어졌을 때,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를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이아들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만약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가 계신다고 생각했으면 아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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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사도행전 11장 18절
- 디모데후서 2장 25절
- 사도행전 5장 30,31절
- 히브리서 5장 7절
- 고린도후서 5장 21절
- 누가복음 23장 34절
- 마태복음 13장 42절
-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
- 예레미야 31장 18절
- 로마서 2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