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죽음과 부활

by blog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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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씨로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씨로, 하나님의 종자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대해서 당시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유대인 랍비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요한복음 3장 5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리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가 다른 답변을 하지 못하도록, 다른 얘기를 하지 못하도록 아주 정확하게 증언을 하신다. 여기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 ‘진실로’를 반복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두 번이라는 숫자를 증언의 숫자라고 부른다. 한 사람의 증인을 가지고는 그 사람을 평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로’를 반복하시는 것은 증인으로서 증언하는 표현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아멘’이라는 단어이다. 아멘, 아멘이다. 아멘은 예수님 자신에 대한 인격적 칭호로도 사용되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여기에 ‘아멘’이라는 말을 하면서 본인이 증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 자신이 또한 아멘이시다. 구약에는 하나님을 아멘이라고 부르고 있다. ‘진실’, ‘믿을만한 것’ 그런 뜻이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만큼 절대적이고 중요한 얘기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다른 말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듭남에 대해 말할 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의견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거듭남은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 죽어서 부활하는 것이다. 죽지 않은 사람은 절대 부활이 없다.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단코 부활은 없다. 오직 죽은 사람만 부활을 기다린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다른 말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거듭남은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 죽어서 부활하는 것이다. 죽지 않은 사람은 절대 부활이 없다.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단코 부활은 없다. 오직 죽은 사람만 부활을 기다린다.

죽음의 의미

이 죽음의 의미를 이 시간에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무엇이 죽는 것인가?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다. ‘정녕 죽으리라’는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바로 그 순간 본능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던 신앙 본능과 그 마음속에 기록했던 본능적 사랑의 법이 다 죽었다. 사랑의 법이 죽었다. 동시에 그는 자유를 잃어버린다. 사단의 노예가 되고 만다. 죄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 절대 자유의지는 사라졌다. 이것이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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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셔서 네가 어찌하여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 아담의 대답은 참 놀랍다. 첫째로 하나님이 책임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여자를 안주셨더라면 제가 유혹을 받을 일이 없었는데 하나님 왜 그 여자를 제게 주셨습니까? 두 번째, 저 여자가 저를 유혹했기 때문에 먹었습니다. 완전히 자신은 빠지고 하나님과 여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보낸다.

다시 하와에게 묻는다. 너는 어째서 먹었느냐? 똑같은 대답을 한다. 하나님께서 왜 뱀을 만드셔서 저 뱀이 나를 유혹하도록 했습니까? 저 뱀이 먹으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역시 자신은 빠지는 것이다. 결론은 무엇인가? 사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마음속에 있던 본능적 사랑의 법이 망가졌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버지, 저의 죄를 아버지께 다시 맡깁니다. 하나님만 의지했던 믿음으로, 본능적으로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두 사람 다 동일하게 죄의 노예가 되어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로 먹는 날에 죽으리라는 그 말씀 그대로이다. 그는 그 날 죽었다. 바로 그 순간 죽었다. 

비록 그가 적어도 900년 넘는 세월을 살았지만 생물학적 죽음, 목숨이 끊어지는 그 죽음만이 아닌 그의 속에 들어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그날 그 시간 이후로 없어져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죽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죽었다고 말씀한다. 이것을 에베소서 2장 1절에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죄에 대한 얘기를 더듬어 보자.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간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 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비록 그가 범죄 했을 지라도 하나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가슴에 안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죄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죄는 참으로 흉악한 것이다. 하나님과 영원한 분리를 만들어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간 상태를 말한다. 비록 그가 범죄 했을 지라도 하나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가슴에 안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죄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죄는 참으로 흉악한 것이다. 하나님과 영원한 분리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죽게 된 아담, 마땅히 없어져야 할 죄의 결과, 그 죄와 함께 하나가 된 아담은 그날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날 죽어야 마땅했던 아담에게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흙이니 다시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삶이 연장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고 회개케 하기 위해서 연장되어 있는 것뿐이지 우리는 이미 그날 죽은 것이다.

그런데 마땅히 죽어야 할 아담과 하와를 대신해서 바로 그날 요한계시록 13장 8절의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 바로 그 양은 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대신하여 죽었다. 창세기 3장 21절에 하나님이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말한다. 바로 그날 양이 죽고 양이 남겨준 그 피 묻은 가죽으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덮으시고, 용서하셨다. 그들의 죄를 가리우시고, 용서하셨다는 증거를, 용서의 영수증을 그들에게 입히셔서 에덴동산 밖으로 그들을 내보내셨다. 왜냐하면 흙으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다시 부활 시켜주시기 위해서. 그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다시 만드셔야만 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그 모습 그대로 계속 살았다면, 그들이 범죄의 결과를 가지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계속 살아야만 했다면 그것은 지옥이다. 그래서 범죄 한 망가진 그의 육체, 그의 마음을 예수님이 피로 회복하시고 다시 창조하셔서, 다시 부활 시키셔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셔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몸도 마음도 다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아담과 하와를 대신해서 돌아가셔야만 했다. 그 죄 값을 갚으셔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겠다는 보증으로 그분은 무덤에서 부활하신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 21절에 분명히 약속하시기를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 자기 몸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우리를 변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셨던 그 때 그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말해 죄 없는 유전자로, 죄 없는 몸으로 우리를 다시 자기의 몸과 같이 부활시키셔서 영원히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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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가지고 있는 복음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복음 중에 하나이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거듭거듭 말했듯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헛것이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고 죄가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사망이 없는, 다시는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영원한 소망이요 기쁜 소식, 복음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은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잃어버린 그 본래의 몸으로, 영생의 몸으로 다시 부활하는 부활을 가지고 있는 복음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죄가 죽어야 한다. 다시 회복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의 사랑뿐 아니라 우리 속에 기록해 주셨던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이다. 그것을 조금 더 줄이면 사랑의 법으로 바뀐다.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죄가 죽어야 한다. 다시 회복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의 사랑뿐 아니라 우리 속에 기록해 주셨던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이다. 그것을 조금 더 줄이면 사랑의 법으로 바뀐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계명이다. 그리고 다섯 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으로부터 열 번째 계명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가져 올 수 없다. 그 사랑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회복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들과 하나님의 사랑의 법대로 살 수 있게 되어지는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복음이다. 그것이 놀라운 십자가의 복음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서 다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키워드 : 죽음, 부활, 형상, 씨, 거듭남, 아담, 하와, 선악과, 죄, 지옥, 에덴동산, 회복, 사랑, 본성, 양, 가죽옷, 십자가, 사랑, 십계명, 영생 

성경구절

  • 요한복음 3장 5절
  • 요한계시록 3장 14절
  • 창세기 2장 17절
  • 에베소서 2장 1절
  • 창세기 3장 19절
  • 요한계시록 13장 8절
  • 창세기 3장 21절
  • 빌립보서 3장 21절
  • 고린도전서 15장
  • 마태복음 22장 37~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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