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은혜의 의미

by blog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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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은혜: '헤세드', '헨'

이제 우리가 ‘은혜’라는 단어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은혜, 우리 기독교 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이 은혜라는 단어는 구약과 신약에  참으로 종류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 은혜라는 단어, 두 단어를 생각해 보자.

하나는 구약 성경에 가장 흔하게 쓰인 ‘헤세드’라는 단어이다. 

계속 낱말풀이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낱말풀이를 하지 않으면 성경에 이어지는 낱말, 말씀들을 이어서 어떤 집을 지으려고 할 때 전혀 다른 성격의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헤세드’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단어에 대한 해석이 아주 많다. 어느 쪽에서 보고 설명을 했느냐에 따라서 이 단어에 대한 색깔이 달라진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부모와 같은 사랑, 이 속에는 모든 친절, 용서, 동정, 사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이 속에 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쪽에서 이야기하고 어떤 분은 저쪽에서 이야기하고 보시는 분들의 입장에 따라서 이 단어의 해석이 다양하다.

또 하나의 단어는 ‘헨’이라는 단어이다. ‘헨’은 앞에 있는 ‘헤세드’라는 단어와 색깔이 조금 다르다. 이 ‘헨’은 한 마디로 말하면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그래서 아주 애틋한 사랑에 의해서 은혜를 베푼다는 표현이다.

대표적인 말씀은 에스더 5장 2절에 보면 에스더가 3일을 금식하고 자기 민족을 위해서 왕 앞에 목숨을 내놓고 들어갔을 때 왕이 그를 쳐다보던 그 장면에서 성경은 에스더가 “심히 아름다웠다, 왕이 볼 때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표현한 그 단어이다. 영어로 어떤 번역은 ‘우아하다’ ‘은혜롭다’ ‘아주 매력적이다’로 ‘gracious’ ‘charming’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 단어들이 신약성경 헬라어로 번역이 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헤세드’라는 단어는 대부분 ‘엘레오스’라는 단어로 바뀐다. 이 단어의 뜻은 신약 성경의 헬라어로 ‘자비’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데 거의 많은 경우에 이 단어로 번역이 되었고 이 ‘헨’은 신약 성경에 가장 잘 쓰는 ‘카리스’라는 단어로 주로 번역이 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은혜’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여기 앞에 있는 이 ‘카리스’라는 말의 ‘카르’는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헬라 말의 ‘카라’라는 단어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기쁨으로 주는 은혜이다.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좋아서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랑에 의해서 주어진 은혜를 가리킨다. 

불쌍해서 주어진 ‘엘레오스’라는 단어, 자비를 베풀어서 용서해 주는 그 은혜라는 단어하고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 은혜라는 단어를 종합해 보면 어찌되었든 신구약을 전체를 통 털어서 하나님께서 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이 은혜라는 단어가 쓰인 용례를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말에도 은혜라는 말, 부모님의 은혜라는 말을 혹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적 의미의 은혜라는 단어이다. 일반적인 용법으로 그냥 은혜로 준다. 대가를 지불해서 주는 은혜가 아니고 그냥 거저 주시는 은혜라는 의미로서의 용례가 있다. 예를 들어서 특별히 창조에 속한 은혜들이다. 하나님께서 공기를 만들고 물을 만드시고 우리의 먹을 것을 만들어서 다 거저 주신다. 우리가 돈 낸 일이 없다. 우리가 노력해서 수고해서 받은 대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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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번째는 특별한 은혜이다. 이 특별한 용례를 보면 소위 구속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신 ‘용서의 은혜’이다. 특별히 신약 성경에 이 은혜라는 말을 쓸 때는 이 용서의 은혜를 가리킨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렇다. 사도 바울이 특별히 이 은혜라는 말을 많이 썼다. 이것은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살려 주시는 은혜를 나타내는 소위 특별한 은혜로서의 용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은혜라고 신약 성경에 쓴 그 단어가 기쁨으로 주는 ‘카리스’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가 은혜에 대한 구약 성경에 첫 번째 단어, 창세기 6장에 이 히브리어의 ‘헨’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6장 8절을 보면 우리 한글 번역은 이렇게 번역 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은혜’, ‘헨’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이 배경을 보면 마태복음 24장 37절 38절에서 노아 당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전념했다.

그야말로 식욕과 정욕에 아주 탐닉해서 38절에 보시면 도덕적인, 영적인 감각에 마비가 온 것이다. 그래서 멸망을 당하는 날까지 술에 취해서 세상의 쾌락에 취해서 알지 못했다. 깨닫지 못했다. 죽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홍수 물에 잠겨 죽은 것이 아니라 술과 세상의 쾌락에 잠겨서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두 눈, 여호와의 두 눈 속에서 은혜를 발견했다. 이제 히브리말을 그대로 직역하면 그렇게 번역할 수 있다. 실제로 영어는 그렇게 번역했다.  ‘누구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한다’ 그 말을 일반적으로 우리 한글 번역에는 ‘내가 왕의 눈에서 왕에게 은혜를 입었거든’, ‘왕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 했거든’ 이런 표현으로 우리말은 번역을 했다. 이것은 중국식 번역을 가져온 것이다.(창 6:8, 한글킹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는 분명히 노아뿐만 아니라 노아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성경의 은혜, 가장 일반적이고 위대한 원칙이다.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고 하셨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도 “하나님은 다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가지신 소원이다.

어떤 사람은 멸망, 어떤 사람은 구원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에스겔 33장 11절에도 “악인들이 죽는 것을 결단코 내가 원치 않는다. 돌아서고 돌아서라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죽이겠다가 아니다. 죽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마음과 가슴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글자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져 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다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 거듭 거듭 말씀하셨지만 옛날 애굽의 바로가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아주 못된 마음을 먹고 악에 대해서 마음을 굳게 하고 하나님을 반역했는데 그 이야기를 다른 똑같은 출애굽기에 계속 기록하기를 바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 강퍅하게 하셨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로도 창조하신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가슴 아픔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바로를 어찌할 수 없어 그가 원하는 대로 강퍅하게 하실 수밖에 없는,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픔이 그 가운데 포함 되어 있다.

로마서 8장 29절에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하셨다”고 표현했다. 미리 아셨고 그래서 그것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픔을 그렇게 표현하셨다. 구원 얻는 자들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본인이 선택한 그 선택, 하나님께 죄를 맡기고 용서 받기를 원해서 용서받은 자들의 그 구원을, 그들이 얻은 구원을 그대로 확정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은혜에 대해서 돌이켜 보면 이 은혜는 본인이 결코 구하지 않으면, 원하지 않으면 이미 주어진 은혜가 본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은혜를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이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그 은혜가 본인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에게 복음의 위대한 원칙을 말 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마다”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믿고 안 믿고는 우리 모든 개인들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하나님은 그대로 정하실 수밖에 없다.

 

키워드 : 은혜, 헤세드, 헨, 카리스, 엘레오스, 자비, 용서, 노아, 여호와의 눈, 디모데전서, 베드로후서, 로마서 

 

성경구절

  • 에스더 5장 2절
  • 창세기 6장 8절
  • 마태복음 24장 37~38절
  • 디모데전서 2장 4절
  • 베드로후서 3장 9절
  • 에스겔 33장 11절
  • 로마서 8장 29절
  • 요한복음 3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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