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낸 죄가 무엇인가?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냈다고 성경은 말하는데, 그 죄가 무엇인지? 우리가 그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분명히 하늘에 간다. 죄의 문제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하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죄의 의미
죄가 무엇인가? ‘죄를 짓는다’는 구약의 동사가 크게 나눠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타’라는 동사로 ‘빗나간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죄를 짓다’ ‘득죄하다’는 말로 번역이 되어있다. 그런데 본래 뜻대로 번역된 구절이 사사기 20장 16절에 나온다. 베냐민 자손들이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여기서 ‘틀림’이라는 단어다. 빗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이것이 조금 발전 하면 ‘아와’라는 동사로 바뀐다. ‘구부러진다’는 뜻이다. ‘삐뚤어지다’ 영어로 ‘twist’이다.
세 번째는 ‘파샤’라는 동사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등을 보이는 것’이다. ‘반역한다’ 이것이 명사들이 되면 ‘하타’는 ‘하타아’ 혹은 ‘하타트’ ‘아온’, ‘페샤’ 이다. 이스라엘 말에 다른 ‘죄를 짓다’는 말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쓰인, 하나님께로부터 빗나갔을 때에 어떤 상태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이 출애굽기 34장 7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실 때에 사용한 단어들이다.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빗나가서 구부러지고 그 다음에는 등을 보이고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는 죄의 결과를 잘 보여준 단어들이다. 이것이 구약의 단어들이고, 신약은 ‘빗나간다’는 동일한 뜻을 가진 ‘하마르타노’라는 단어이다. 명사가 되면 ‘죄’라는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로 바뀐다. ‘하마르티아’ ‘빗나감‘이다.
구약의 대표적인 ‘하타’ 빗나간다는 말을 표현한 창세기 39장 9절을 보면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젊었을 때 아주 준수한 미남이었던 것 같다. 키가 크고 아주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자기 주인집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소위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에 갔는데 이 사람의 아내가 젊고 잘생긴 요셉을 보고 유혹을 한다. 그 때에 요셉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한다. 그 말을 히브리 원래말로 직역하자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가리이까’ 어떻게 내가 빗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 표현이다.
신약의 ‘하마르타노’도 마찬가지이다. 누가복음 15장 21절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하는 말이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그 말의 본래 말은 ‘하나님과 아버지로부터 내가 빗나갔사오니’ 그런 표현이다.
반대로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면 만들어 내는 물건이 있는데 그것이 ‘의’이다. 의도 죄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의라는 물건은, 열매는 내가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의를 만드신다.
죄가 만들어지는 과정
예를 들어 창세기 5장에 보면 남자들이 아이를 낳았다, 라고 계속 기록하고 있다. 아담이 셋을 낳았고 셋이 에노스를 낳았고 다 남자들이다. 어떻게 남자가 아이를 낳는가? 남편이 아내에게 자기를 주지 않는 이상 생명이 안 태어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 스스로는 의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마귀에게 몸을 바쳤을 때, 마음을 바쳤을 때, 마귀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죄라는 물건을 만든다. 죄는 마귀와 더불어 바람을 피워서 만들어낸 사생아이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고 마귀와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냥 죄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가 마귀의 아들이, 자식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마귀의 자식이라는, 다시 말해 마귀의 종자라는 사실을 증거 하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 욕심이라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종자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나오지 오이가 나오지 않는다. 종자가 변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왜 창세기 2장 17절에 “네가 범죄 하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날 죽지 않았다. 적어도 꽤 오랫동안 살았다.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지만 아담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900년 넘게 살았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의미가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주셨던 유전자, 종자가 죽고 하나님 종자가 아닌 마귀의 종자로 우리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변이가 온 것이다. 죄라는 물건은 정말 너무나 가슴 아픈 것이다.
죄는 어떤 말이나 행동만이 아니다. 나쁜 말, 나쁜 행동, 그것이 죄의 전부가 아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분명히 그 죄의 뿌리가 있고 죄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있고 종자가 있다는 것이다(마 12:22-35). 그래서 근본적으로 죄를 해결하려면 그 종자를 없애야 된다. 그 종자를 없애지 않는 이상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의 실체를 알기까지는 우리가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죄를 정확하게 예수님의 말씀, 성경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고보가 야고보서에 맨 처음에 죄라고 말하지 않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약 1:15) 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죄를 해결하는 것은 죄에게 달려있는 잎이나 꽃이나 열매를 따는 것이 아니고 죄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 다시 말해 죄의 종자를 아예 빼내어 없애고 새로운 본래종자인 하나님의 종자를 다시 우리 안에 만들어서, 창조해서 심는 것, 그것 밖에는 죄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죄는 무서운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를 설명하실 때 누룩이라고 설명하셨다. 누룩은 밀가루 속에 조금만 넣어도 부풀어 오른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죄를 누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죄의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빗나갔다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이 법을 만든다.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왜냐하면 네가 간음하면, 살인하면 네가 너무 불행해진다. 너무 고통을 당한다. 죄의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불행을 결코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죄가 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엄마가 ‘야, 밥 먹어라, 라면 먹지 마라!’ 그 말이 원망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엄마가 왜 라면 먹지 말고 밥을 먹으라고 했는지 그 사랑을 이해하면 스스로 라면을 그만둘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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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사사기 20장 16절
- 출애굽기 34장 7절
- 창세기 39장 9절
- 누가복음 15장 21절
- 창세기 5장
- 요한복음 8장 44절
- 창세기 2장 17절
- 마태복음 12장 22절-35절
- 야고보서 1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