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율법은 사랑이다 - 생명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

by blog posted Nov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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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와 율법

여기에서는 율법의 본질을 더 깊이 연구 하겠다.

창세기 2장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우리는 흔히 줄여서 ‘선악과’ 라고 부른다. 이 ‘선악과’ 라는 본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선악의 지식의 나무’ 라는 뜻이다. 우리 말 성경은 선악을 ‘알게 하는’으로 풀어서 썼다.  본래 말은 ‘알게 하는’이 아니라 ‘지식’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이 선악을 가르쳐주는 지식, 그것이 율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율법을 기록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험하는 시험지로서 이 ‘선악의 지식의 나무’ 즉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실제로 가르쳐주는 그런 나무로 이 ‘선악과’를 창조하셨다. 

이 ‘율법’이라는 단어, 우리가 흔히 생각하면 딱딱하고 좀 무섭기까지 한 ‘율법’이라는 단어, 이게 뭘 말하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토라’ 라고 하는 단어를 쓴다. 이 말 뜻은 ‘가리키다’ 혹은 ‘가르친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토라’, ‘율법’이라는 이 단어가 성경에 쓰인 예를 다 찾아보면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리키거나 가르치실 때에 하시는 모든 말씀 그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사람의 생명과 죽음에 관하여 하신 말씀’ 그것이 율법이다. 그래서 여기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희가 죽으리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창세기 2:17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경고 이상의 것이었다.

다시 정리 좀 해 보자.
이 선악의 지식의 나무를 너희가 먹으면 죽으리라 하신 말씀은 

첫째로, 이 말씀이 가리키는 가장 근본적인 뜻은 말 그대로 ‘가르침’이다. ‘생명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 생명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을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가 죄를 모르고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율법 문제는 죽음에 대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두 번째,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말씀을 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아저씨가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이다. 그러면 여러분들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에는 다 부모의 사랑이 그 속에 담아져 있다. 

예를 들어 보면. 여기 제초제 병이 있다.
아이가 그것을 가지고 노는데 그게 음료수로 알고 열어서 먹으면 죽는다. 그래서 엄마가 ‘이것 먹으면 틀림없이 죽는다. 그러니까 먹지 말라. 먹으면  틀림없이 죽는다'고 말할 때는 그 아이보고 죽으라는 말인가? 죽지 말라는 말인가? 그것은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는 부모의 사랑의 표현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 말씀하고 있는 모든 율법은 그 자체가 사랑이다.

엄마가 '공부해라 너 공부안하면 나중에 고생한다'. 옛날 어른들이 그랬던 것은, 부모가 공부해라 어려운 공부를 자꾸 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의 표현일 뿐이지 그 자식을 고생스럽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 인스탄트 식품 좋아하는데 엄마가 그런 것 먹지 말고 건강 식품 먹으라고 할 때에는 먹으면 해롭고 병 걸린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지만 아이들은 인스탄트 식품이 좋아서 습관적으로 계속 먹고 결국 나중에 병 걸린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하라, 하지마라 할 때에는 그 말씀 전체가 다 말할 수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들 이다. 그 말씀을 준 동기도 사랑이고 그 내용도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힘들고 귀찮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우리가 이미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16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라고 했다. ‘내가 율법에 선한 것은 시인하지만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에 팔렸도다. 나의 죄된 본성 때문에 어려운 것일 뿐  율법 자체는 거룩한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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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그 말씀은 ‘너는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절대적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자꾸 위협이나 선고로 들으면 안 된다. 그것은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 더 중요한 것이다. 아주 이 말씀에 바닥에 깔려 있는 내용인데.  아담이 범죄 후에 하나님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미 아담은 죽었다. 사랑을 거절하고 선악과를 먹었다. 그날 그 순간 죽은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다. 마귀의 형상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왜, 먹었느냐? 고 물으시는 아버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 때문에 먹었습니다. 왜, 저 여자를 나에게 주셨습니까?’라고 죄의 원인을 아내와 하나님에게로 돌렸다. 먹을 때는 자기 아내 없이는 못 살겠다며 먹었는데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왜 먹었느냐고 할 때 아담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는 마귀의 자식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원망하고 대적했다. 아버지, 뭐하러 저 여자를 줘 가지고 나더러 먹게 만듭니까? 하와에게도 물어봤더니 하와도 똑같은 대답을 하였다. 뭐하러 저 뱀을 만들어가지고 저것이 나한데 와서 나를 유혹해서 먹게 만들었습니까? 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마귀의 자식들이 되어 버렸다. 그 때 아버지 심정이 어떻겠는가?

우리 한번 상상해 보자. 아이들이 나쁜 짓하고 왜 그랬냐? 하면  계속 부모를 대적하고 원망하고 아빠 엄마가 나를 잘못 길러서, 돈을 안 주어서 그랬다고 하며 핑계대면 그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러면 아이고 이 못 된 놈아 너는 그 고생을 해도 싸다. 그리고 내 버리는가? 그것 다 누가 해결하는가?  아버지, 어머니가 뒷감당은 다한다. 그것이 본능적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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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선악과 먹는 날에는 틀림없이 죽으리라' 그렇게 말씀 해 놓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 창세기 3장18,19절에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정녕 죽으리라.'해서 영원히 버리셨는가?. 여기 ‘정녕 죽으리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죽는다’ 는 동사가 두 번 반복이 되어 있다. ‘죽는 일을 죽으리라’ 그렇게 소위 이게 문법적으로 앞에 것은  부정사이고 그러고 뒤에 것은 미완료동사인데 이렇게 부정사와 미완료 동사가 나올 때는 ‘틀림없이’ 강조하는 표현이다. 성경 원어의 뜻이 그렇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자 로마서 6장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사망은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다.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그 사망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래 너는 오늘 확실히 죽으리라. 너는 죽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너는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네가 본래 거기서 취함을 입었기 때문이니라'고 하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아담 대신 돌아가시면서 요한복음 5장28,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다. 아담 이후에 아담의 모든 자식들이 아담의 죄 때문에 다 함께 사망을 당하게 된 모든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담을 흙으로 돌려보내신 이유가 부활시키기 위하여 돌려 보내셨다는 것이다.

'에이 못된 놈 너는 오늘 없어져라'. 그렇게 못하시는 아버지이다. 판사, 검사, 순경아저씨는 에이 못된 놈아, 너 같은 놈은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너는 없어져야 된다고 하며 사형시키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못한다.

자식이 사형을 당해야 되었다. 그래서 자식 대신, 매를 맞으려면 매를 맞아야 될 몸이 필요했기 때문에 몸을 입고 오셨다. 또 살, 뼈를 입고 오셔서 대신 맞으시고 대신 벌 받고 대신사형 당하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죄 값을 갚기 때문에 다시 부활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 있으라'는 것이다. 처음에 성경을 읽을 때 이 창세기 3장19절 읽을 때 마다 얼마나 가슴이 서늘했는지 모른다. 아 정말 너무 허무한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성경을 깊이 연구해보면 그게 끝이 아닌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야 될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본래대로 죄 없는 몸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돌아가 있으라는 것이다. 이미 죄로 더러워졌고 망가졌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영원히 살 수 없다. 병들고 죄 있는 몸으로 영원히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암 걸린 환자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실제로 여러분 계속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그분들이 처음에는 '예' 그런다. '근데 영원히 안 죽고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아무도 대답 못한다. 암 나으셔서 몇 십 년 더 사시는 것이 그것이 행복일 수도 있다. 암이 없어졌다고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축하하면 노란 얼굴이 금방 화기가 확 돌아오고 사슴처럼 뛴다. 너무 좋아서... 

그렇게 해 봐야 몇 년이나 더 사시겠는가? 우리가 현재의 죄악 세상에서 앞으로 100년이나 200년 살고나면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정말 너무나 흉측한 모습 될 것이다. 그러고도 계속 안 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 정말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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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마서 6장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말은 첫째 사망을 가리킬 때는 그게 축복이다. 고통을 그치고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왜 우리로 하나님께서 첫째 사망에 흙으로 돌리셨는가? 다시는 죄 없는, 병들지 않는, 고통이 없는, 늙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몸으로, 죄 없는 몸으로 우리를 다시 창조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 하셨는데, 실제로 정녕, 완전히, 영원히 죽은 분은 바로 그 아버지였다. 자식은 죽일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만드시기 위해서 토기장이가 잘못된 그릇은 다시 진흙 구덩이에 던지는데 왜 그런가? 다시 만들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께로 부터 버림을 받고 돌아가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 말은 무슨 말인가? ‘네가 죄를 범하는 날에는 네가 아니라 내가 틀림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다. 아멘!

그것이 십자가에 나타났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보면 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무슨 저주를 받으셨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무슨 저주를 받으셨다고 하는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씀한다.  율법은 죄를 저주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 여기 콜레라균이 돌아다니면. 콜레라에 걸려 죽게 된다. 그러면 여기 서울시에서 소독차가 와서 화장실마다 다 소독한다. 왜? 그 콜레라균이 퍼지면 죽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그 콜레라균을 반드시 죽이는 것이다.

율법과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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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죄짓게 하고, 병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를 그렇게 가슴 아프게 하고, 결국은 죽이는 그 죄를 율법은 반드시 죽이는 것이다. 율법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너무 좋은 것이다. 율법이 없으면 안 된다. 우리를 고생스럽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고 죽이는 그 죄를 반드시 없애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율법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죄를 저주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21절을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히 율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것을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죄는 종자이다’ ‘유전자이다’ ‘마귀의 종자’  ‘마귀의 유전자’ 라고 설명했다.

죄의 유전자가 되신 예수님 그분은 그분 자신이 ‘의’ 이시다. 완전한 ‘의’ 이시다. 그런데 죄가 되셨다. 의가 되시고, 완전한 사랑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이기심인 우리의 죄가 되셔서 죄를 뒤집어쓰시고 함께 죽임을 당하셨다.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흔히 유전자 해체라고 한다. 예수님이 당하신 죽음은 유전자 해체이다. 유전자, 종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존재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다 그렇게 되어야 될 사람들이다. 없어져야 될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그 저주, 영원히 없어져 버리는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살다 죽는 그런 죽음하고는 전혀 다르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아직은 아무도 없다. 왜? 자식들이기 때문에 자식들을 영원히 죽일 수가 없다. 못 죽이시고 흙 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떤 자식도 영원히 버리신 자식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자식을 버릴 수 있는 아버지는 없다.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누구를 대신 버리셨는가? 당신의 형상을 가지신 당신하고 똑같으신 분 에수 그리스도를 버리신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이야기이다. 잊지 마시기 바란다. 사람 중에, 하나님의 아들과 딸 중에 우리 아버지가 버리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버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저씨 이신 분이 아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다. 반항하고 대적하면 할수록 더 깊은, 더 아픈 가슴을 가지신 분이다. 끝까지 아버지를 반역하고, 끝까지 아버지 손에 못을 박던, 끝까지 아버지를 버렸던 그 자식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 그대로이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선물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것은, 이 은혜, 이 사랑을 거절한 그 사람의 선택의 결과이다.

죄는 두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행복하라고 주신 사랑의 말씀, 이렇게 살면 절대로 불행하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주신 사랑의 율법을 거절한 것이다.  사랑의 율법, 그 사랑의 말씀을 끝까지 거역하고 끝까지 아버지를 거부한 자식들을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사랑, 그 용서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가장 악독한 죄이다.

두번 째, 용서의 십자가를 거절한 것 또한  가장 악독한 죄이다. 말을 안듣는 정도가 아니다.  목숨까지 바치시면서 죄 값을 값아서 용서해 주셨는데, 그 사랑을, 그 용서를 거절하는 것, 그 이상은 아버지가 어떻게 하실 수 없다. 목숨이상 뭘 더 내 놓을 것이 있겠는가? 그것이 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서의 사랑마저 거절하는 그 자식들을 향해서 하셨던 기도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용서

용서는 끝이 없는 것이다. 용서를 거절하는 그런 자들 까지도 용서하실 수밖에 없는 사랑 그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가슴 속에 있는 영원한 사랑이다. 마태복음 25장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지옥불, 그 영영한 불이라는 불은 자식 중에 어떤 자식들을 위해서도 준비한 불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또 여기 ‘죄인을 위한 불’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불’이지 어떤 죄인들을 위해서도 예비한 불이 아니다. 

여러분 여기 ‘저주를 받았다’라는 본래 말은 ‘묶어 놓는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저주를 받았다’ 하는 말은 자기가 스스로 마귀에게 ‘나를 묶어 주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술에게 몸을 바치는가? 마약에 몸을 바치는가? 자기가 스스로 바친다. 술 그만 먹어라하면 당신이나 잘 먹고 천당 가라. 나는 술이 너무 좋다. 죽어도 좋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마약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중독이 되면 영락없이 자기를 갖다 바친다. 집도 팔고 땅도 팔고 다 갖다 바친다. 그리고 제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자기를 갖다 묶는다. 여기 ‘저주를 받았다’ 하는 말의 표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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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자기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 모두도 똑같다. 세상 쾌락에, 돈에, 텔레비젼에 자기를 갖다 바친다. 나를 묶어 주시오.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시오. 여러분 텔레비젼한테 묶어 두면 행복하지 않은가? 그리고 텔레비전을 끄지 않는다. 자기는 자고 있고 텔레비젼은 켜 있다.돈에게 갖다 바치는가? 알고 그렇게 한다.  몰라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나쁘고, 이렇게 하면 좋고, 이게 생명의 길이고 이게 사망의 길인 것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마귀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헤쳐 나올 길이 없다.

우리가 흔히 '병에 걸린다' 그러는데 ‘걸린다는 것’이 뭔가?  갈고리로 딱 걸렸다는 것이다. 못 나온다. 암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 분들에게 늘 그런 얘기를 한다. '당신 암에 걸리지 말고 예수님한테 걸려라. 예수님 사랑, 예수님 용서에 걸려라. 왜? 병한테 걸려 가지고 그렇게 끌려 다니는가?

예수님한테 걸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병한테 걸리면 육신의 고통만 당하고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한테 걸리면 영원히 사는 것이다. 제발 여러분들 예수님에게 걸리시길 바란다. 우리 예수님에게 갖다 몸을 바치면 된다. 마음을 바치면 된다. ‘내가 너를 이미 용서했다. 다 용서해 놓았다. 제발 내 사랑을 받아 다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에게 자신을 갖다 걸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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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러 라는 사람이 있었다. 몇 백 년 전에 사셨던 영국의 목사님이셨다. 그런데 이분이  미국에 갔는데 그 당시에는  미국이 아주 열악한 나라였다. 초기에 미국에 가서 전도하고 오다가 풍랑을 만났다. 아주 큰 배인데도 풍랑을 만나니까 이 배가 곧 뒤집어 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할 수없이 무서워서 배아래 층으로 내려갔는데  사람들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있었고  등잔을 메달아 놨는데 왔다 갔다 하였다. 사람들이 토하고 난리 났는데 한쪽에서는 작은 무리가 계속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지금 잘못하면 우리가 다 죽을 텐데 하고 가까이 가서 ‘당신들은 무섭지 않소?’ 하고 물어 보니까 ‘아니요. 우리는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나중에 살아서 돌아와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는 무서운 태풍 속에 있었지만 거기 있었던 사람들은 똑같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데도 그 분들은 태풍속이 아니라 예수님 속에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지금 이 세상 속에 산다. 집에 살고, 어떤 삶의 테두리 안에 산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과 아무 상관없이 예수님의 사랑 속에 사는 분들이 있다. 여러분은 예수님 사랑 속에 사시길 바란다. ‘내가 너를 이미 다 용서해 놓았다. 두려워 말라 소자야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의 품속에서 사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길이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이미 죄악의 씨(종자)들이다.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다. 생각이나 행동이나 말들이 자동적으로 죄의 생각을 하고 죄의 행동을 하고 죄의 표정을 짓고 죄의 말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마시길 바란다. 여러분 우리를 이미 용서하시고 계신 주님의 가슴에 내 자신을 던지면 되는 것이다.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어 주신다. 예수님 속에는 의와 사랑만 있다. ‘그것을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저 안에도 당신의 마음을 창조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하시면 된다.

 여러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예수님 속에는 영원한 사랑과 용서와 생명이 있다. 그분에게 몸과 마음을 던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절대로 의롭게 되고 착하게 되고 선하게 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대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 후 성령께서 내 안에서, 그분이 나를 통해 하시는 선행이 아닌 것은 다 위선이다. 그래서 그 위선자들이 자기보다 조금 못한 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 똑같은 죄인들이다. 예수님 가슴속으로 우리 자신을 숨기고 그분 가슴에 우리 자신을 던지는 믿음을 여러분들이 다 행사하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눈을 감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품으신 가슴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란다.

우리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있는 이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 가자. 자식이기에 절대로 버릴 수 없으셔서 가슴에 다 묻고 가신, 끝내 가슴이 갈라지셨어도 절대로 포기 못하셨던 그리고 그 자식들의 죄를 영원히 당신 가슴에 영원히 묻으셨던 그 용서와 사랑의 가슴에 우리를 영원히 받아주시고 묻어 주시도록 기도하자. 하나님과 이웃만을 생각하는 우리들로 꼭 부활시켜 주시고 그렇게 살다 가게 하여 주시기를 오늘도 정말 간절히 간절히 소원하고 우리 죄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꼭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하자.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고 살면 그 사랑이 죄로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녹여서 통회하게 만들어 주고 모든 죄들을 맡기는 믿음을 창조해 주신다. 그리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해 주신다. 그때 내 이웃을 내 몸처럼 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율법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율법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품성인 사랑은 율법 속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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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창세기 2장 17절
  • 로마서 7장 16절
  • 로마서 6장 23절
  • 창세기 3장 18,19절
  • 갈라디아서 3장 13절
  • 고린도후서 5장 21절
  • 마태복음 25장 4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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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4. 죄를 맡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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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5. 믿음과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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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6. 은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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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7. 은혜의 속성(주시는 은혜와 받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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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8. 은혜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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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9. 은혜와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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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10. 성경 상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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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1.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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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12. 회개의 주인...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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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13. 회개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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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4. 계속되는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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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5. 주시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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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6. 구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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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7. 참된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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