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봄으로 살 수 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 예수 또한 들려졌다.(요 3:14) 뱀에게 속고 물린 자는 모두 이 예수를 바라봄으로 살 수 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십자가에서 빛나는 빛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그때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믿음을 통해 영혼에 새 생명을 낳는다.
생각과 욕망은 그리스도의 뜻에 굴복된다. 마음과 생각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기 위해 우리 안에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된다.(빌 3:21/한킹) 그때 하나님의 율법이 생각과 마음에 기록되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말할 수 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기쁘게 행하려 합니다.”(시 40:8)
니고데모와 만나시면서 예수께서는 구원의 계획과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명을 드러내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왕국을 계승할 모든 이의 마음속에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을 한 단계 한 단계 그렇게 완전하게 설명하신 일은 그 후의 설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공생애의 시작에 즈음하여, 산헤드린 의원으로서 가장 감수성 있는 마음을 가지며 백성의 교사로 임명된 자에게 진리를 밝히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빛을 환영하지 않았다. 니고데모는 진리를 마음속에 숨기고 있었으므로 3년 동안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씨를 뿌린 땅을 잘 알고 계셨다. 밤에 한적한 산 속에서 한 청중을 앞에 두고 하신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다. 니고데모는 한동안 그리스도를 공공연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생활을 주시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여러모로 숙고했다. 산헤드린의 회의에서 그는 예수를 죽이려는 제사장들의 계획을 몇 번이나 반대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 들려졌을 때, 니고데모는 감람산에서의 가르침을 상기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요 3:14, 15) 그 은밀한 만남에서 비추는 빛이 갈바리의 십자가를 비추었으며,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세상의 구속주이신 것을 알았다.
주의 승천 후 제자들이 박해 때문에 흩어졌을 때 니고데모는 담대하게 전면에 나섰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소멸될 것으로 유대인들이 예기했던 어린 교회를 받들기 위해, 자신의 부(富)를 사용했다. 전에는 신중하고 의심하던 그가 위기의 때에 바위처럼 굳게 서서 제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복음 사업을 전진시키는 자금을 공급했다. 그는 전에 그에게 존경을 표하던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고 박해받았다. 그는 세상의 재물에는 가난해졌지만, 예수와 만났던 밤에 시작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니고데모는 요한에게 그 만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요한은 그 이야기를 펜으로 기록했다. 그곳에서 주어진 진리는, 유대인 관원이 신분이 낮은 갈릴리의 교사로부터 생명의 길을 배우기 위해 어두컴컴한 산으로 간 그 엄숙한 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역시 중요하다.
성경구절
- 요한복음 3장 14절로 15절
- 요한복음 1장 29절
- 빌립보서 3장 21절
- 시편 40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