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경우
구약에서 '믿음'으로 사용된 된 단어가 히브리어로 '아만'(aman)이란 동사이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아멘’이란 말이 나온 것 기억하는가? 아멘이 바로 이 단어에서 나왔다.
영어로 confirm이란 말로 주로 번역된다. 그래서 이 ‘confirm' ’굳게 한다’는 동사, 우리말로는 그것을 사역형동사라고 한다. 사역형, 뭘 ‘누구한테 맡겨서 그렇게 하게 한다’는 이 단어를 ‘아만’이라는 사역형동사로 바꾸어 놓으면 그것을 거의 대부분이 우리말에 ‘믿는다’ 라는 말로 번역을 했다.
최초로 구약에 '아만'의 사역형 동사가 처음 나오는 곳이 창세기 15장 6절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하신 저 유명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원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성경 절인데 거기 그런 표현이 실제로 사용되었다. 이 ‘아만’이란 동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믿는다’라고 번역했을 때, 그 뜻은 자기스스로가 설수 없기 때문에, 굳게 설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서있어야 하는데 자꾸 넘어지기 때문에, 누구의 손에 맡겨서 결과적으로 그 손이 와서 ‘굳게 세워준다. 견고하게 한다’는 뜻이다. 자기 스스로 굳게 서는 것이 아니고 누구한테 ‘맡겨서 굳게 서게 한다’ 는 그 뜻이 ‘믿는다’라는 것이다. 이 ‘아만’이란 동사에서 능동형 소위 기본형으로 쓰는 단어로는 ‘믿는다’라고 번역된 말이 없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연구하는 이 내용을 잘 이해하셔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말로는 ‘내가 믿는다’ 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히브리말에는 그런 말이 없다. ‘내가 스스로 혹은 내 힘으로 무엇을 믿는다’ 그런 개념이 없다.
그러니깐 우리가 ‘믿는다’라는 말을 이해할 때 아주 중요한 말이다. 정말로 중요한 얘기이다. 이것을 모르면 진리에서 빗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은 여기서부터 샘의 근원이 달라지면서 딴 샘이 나온다. 딴 샘이 생기는 것이며 전혀 다른 물이 나오는 다른 샘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
역대하 20장 20절에 이 단어가 사용된 예를 함께 찾아보겠다.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신뢰하라’는 말씀을 주목하라. 이 말은 ‘아만’이라는 동사에 사역형동사이다. 그 다음을 보자.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여기 ‘견고히 서리라’는 말이 '아만'의 수동형 동사이다. 시키는 것은 사역형이다. ‘빨간 물속에 옷을 집어 넣었더니 그 빨간 물이 옷을 빨갛게 만들어서 옷이 빨갛게 되어 진다’는 이 예문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수동형 동사이다.
다시 이 말씀을 잘 보자. 똑같은 ‘아만’이란 동사인데 앞에 것은 사역형 동사이고 뒤에 것은 수동형 동사이다. ‘견고히 서리라’ 이 말은 자기가 견고하게 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맡겨서 하나님께서 나를 견고하게 해주셔서, 내가 견고하게 서게 되어 진다는 수동형이다.
'나'라는 존재가 나 혼자는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다. 자꾸 넘어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그러면 결과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내가 견고하게 서 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아만’이란 동사의 두 가지 모습이다.
그런 예들이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온다. 하나만 더 보자. 이사야 7장 9절 끝에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그리고 끝에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여기서 ‘믿지 아니하면’은 ‘아만’의 사역형 동사이다.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에서 ‘서다’ ‘정확하게 굳게 세워진다’ 그것은 아만의 수동형 동사이다.
사단의 거짓진리를 조심하라
‘믿음’에 대해서 개념정리를 잘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귀가 6천년동안 우리인간에게 뭐라고 말했는가하면 ‘네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이룩하라. 신앙이든지 무엇이든지’다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아주 익숙해 있다. 우리가 늘 하는 이야기 있지않은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 말이 어떤 면에선 진리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혀 진리가 아니고 진리의 반대이다. 이 개념이 서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상을 마귀가 계속 주입시켜 왔다. 실제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얻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이 땅에서 사다리를 놓아가지고 하늘 끝까지 사람이 올라가서 우주의 중심까지에 닿는 것이 가능한가? 영원히 해도 불가능하지만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사다리를 내려가지고 땅에 닿게 하면 아무 일도 아니다. 야곱의 사닥다리를 기억하는가?
사닥다리를 누가 내리는가? 하나님께서 사닥다리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다리를 놓아 가지고 달나라까지 가겠는가? 태양 끝까지 가겠는가? 우주의 끝을 어떻게 가겠는가? 그것은 불가능 하다.
그래서 사단은 끊임없이 안 되는 일을 시킨다.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게 하는 것이 사단이 하는 방법이다.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게 하고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단의 술책이다.
신약의 경우
신약성경에는 ‘믿음’을 '피스튜오'(pisteuo)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가 번역된 것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데 번역된 것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자
먼저 요한복음 2장 23절 24절에 “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23절의 '믿었으나’ 는 헬라어로 '피스튜오’라는 동사이다.
24절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거기 ‘의탁지’라는 단어도 역시 피스튜오라는 동사이다. 23절에는 ‘믿었다’라고 번역했고, 24절로 와서 ‘의탁’즉 ‘맡기다’란 말로 번역했다. 본래 ‘믿는다’는 말이 가진 의미가 바로 ‘맡긴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굳은 믿음
좀 더 확실하게 번역한 구절이 있다.
누가복음 16장 11절에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기록 되어 있는데 여기 ‘맡기겠느냐’ 이 단어가 ‘피스튜오’이다. 여기는 아주 정확하게 우리말로 ‘맡긴다’라고 번역 되었다. 그러니까 이 ‘믿는다’는 동사의 헬라어나 히브리어에서 동일하게 가르치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는 ‘맡긴다’이다. 자기 스스로 설수 없기 때문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피스튜오’가 수동태로 쓰인 한 예를 찾아보면,
로마서 3장 1절-2절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여기 ‘맡았다’는 말이
'피스티오’의 수동태로 되어있다. 우리말로는 ‘맡았음’이라고 되어있다. 마치 유대인들이 성경을 자기들이 떠 맡았다, 끌어 앉았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맡겨졌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맡겨졌다’가 본래 뜻이다.
그래서 ‘피스튜오’라는 동사나 ‘아만’이란 동사가 구약이나 신약에 공히 ‘맡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게 성경의 원래 뜻이다. 여기서 약간의 말의 형태가 변형된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바뀐 일이 없다.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믿음' 곧 맡기는 것에 대한 실생활에서의 예
어떤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에게 결혼을 앞둔 딸이 있었다. 그 딸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어떤 청년과 결혼을 목표로 교제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남자 청년이 사위 감으로 영 못 마땅했다. 그래서 딸에게 교제를 중단할 것을 종용했는데 그 딸의 입장은 어머니와 전연 달랐다. 너무나 그 남자 청년이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씀에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며 계속 교제를 했다. 시간이 흘러도 중단하기는커녕 계속하니까 어머니는 딸의 장래가 불안했고 그만큼 딸을 압박했다. 딸도 양보할 수가 없다보니 모녀 사이가 갈등관계로 변해 갔다. 드디어는 어머니도 딸도 양보할 수 없는 상태까지 되자 감정싸움이 심각하게 되어 이 어머니가 이럴 경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연락을 했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그 남자 청년과 딸이 결혼하면 행복할 것인지, 불행할 것인지 하나님보다 어머니가 더 잘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니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보다 미래를 더 잘 알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딸의 마음을 바꿀 수가 있습니까?' '딸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불가능 하다'고 했다. 그러면 더 이상 그 교제를 참견하지 마시고 그 결혼문제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겨보라고 조언했다.
하나님께 어떻게 맡기는지 가르쳐달라고 해서 기도로 맡기라고 하며 기도할 내용 '아버지 저는 그들의 이후의 미래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대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좋던 딸과의 관계가 매우 험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제 생각을 버리고, 제가 그들을 헤어지게 하려고 했던 생각과 노력을 버리고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하신 약속의 말씀 속에 들어가서 그 약속의 말씀 속에 계신 아버지 발 앞에 저의 이 염려와 문제를 내려놓고 아버지께 맡기겠사오니 그 교제가 아버지의 뜻이면 이루어지게 하옵시고 아버지 뜻이 아니면 헤어지게 해 주옵소서! 저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이 문제를 맡아 주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시간표대로, 아버지의 방법대로 해결해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해 보라고 했다.
1주일 뒤에 다시 연락이 왔는데, 그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불안하고 그 남자 청년을 보면 웬지 밉고, 보기 싫고, 딸에게는 계속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안 되느냐고 질문했다.
예레미야 29장 13절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는 말씀대로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할 뿐 아니라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약속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견고히 서도록, 믿음 달라고 다시 기도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다시 1주일 정도 지났는데 연락이 와서는 '이제는 마음에 평강이 있고, 딸에게도 잔소리가 나오지 않고 그 남자 청년을 봐도 미운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이, 그런 상태가 바로 하나님이 견고케 해 주신 상태인 믿음 곧 맡기는 것이라고 말해주며 이제는 하나님께 맡겼으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문제를 처리하시는지 그때까지 기다려 보시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마귀는 어떤 문제든 염려든 죄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게 방해 할 뿐만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맡긴 일에 대해서 반드시 시험을 하되 그 문제의 해결이 지체될 때 또 다시 염려하게 하여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시험을 한다고 조언했고 그리하여 맡기는 것 곧 믿음을 견고케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데 이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너무나 중요한 일 이었으므로 이 어머니는 주의하고 계속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약 3개월 이후에 연락이 왔는데 딸이 그 남자 청년과 헤어졌다고 하며 너무 기뻐하고 감격해 했다. 맡기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너무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믿음'은 마음으로나 생각에서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로 행동으로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맡겨서 하나님이 견고케 해 주셔야,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우리가 맡기게 되고 더욱 믿음을 받고 더욱 더 많이 맡기게 되어 "믿음에서 믿음으로"성장하는 것이다.
동의,인정,아멘,믿음,구약,신약,사닥다리,구원,불가능,결혼문제,인정,약속의 말씀
성경구절
- 창세기 15장 6절
- 역대하 20장 20절
- 이사야 7장 9절
- 요한복음 2장 23,24절
- 누가복음 16장 11절
- 로마서 3장 1절~2절
- 잠언 16장 3절
- 예레미야 29장 13절
- 디모데후서 1장 9절
- 이사야 49장 15절
- 이사야 43장 25절
- 야고보서 2장 19절
- 로마서 2장 4절
- 요한복음 14장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