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은혜의 의미

by webmaster posted Jun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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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제시하는 은혜는 일반적이고 위대한 구원의 원칙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노래를 아십니까? 한때 악랄한 흑인 노예상이었던 존 뉴턴(John Newton)이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찬송가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자 영혼의 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에서 ‘은혜’라는 단어를 참 많이 씁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 은혜라는 단어는 ‘헤세드(חֶסֶד)’입니다. 이 ‘헤세드’라는 단어는 부모의 사랑을 떠올리면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단어에는 ‘친절’, ‘용서’, ‘동정’, ‘사랑’ 등등 여러 용례들과 의미들이 더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부모와 같은 사랑입니다. 

또 하나의 ‘은혜’를 뜻하는 단어는 ‘헨(חֵ֖ן)’이라는 단어입니다. ‘헨’은 ‘헤세드’라는 단어와 색깔이 조금 다릅니다. 이 ‘헨’은 상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우아해서 아주 애틋한 사랑으로 그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헨’이 쓰인 대표적인 용례가 에스더 5장 2절입니다. 에스더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자기 민족을 위해서 3일을 금식하고 왕 앞에 목숨을 내놓고 나아갔을 때 성경은 그녀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합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규 끝을 만진지라.”

구약의 이 단어들이 헬라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헤세드’는 ‘엘레오스(ἔλεος)’로, ‘헨’은 ‘카리스(χάρις)’로 바뀝니다. 우리말로는 보통 ‘엘레오스’는 ‘자비’로, ‘카리스’는 ‘은혜’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카리스’라는 말의 어근인 ‘카라(χαρά)’는 ‘기쁨’, ‘환희’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카리스’는 기쁨으로 주는 은혜를 뜻합니다. 너무 기쁘고 좋아서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랑으로 주어지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반면 ‘엘레오스’라는 단어는 애틋하고 불쌍해서 주는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말에서도 ‘부모님의 은혜’라는 말을 종종 쓰고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베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대가를 지불했기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저 주는 것을 가리킬 때 일상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는 창조 때부터 만물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기를 만드시고 물을 조성하시고 우리의 먹을 것들을 만들어서 다 거저 주셨습니다. 우리가 돈을 낸 일도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 수고해서 받은 대가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구속(救贖)에 의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용서의 은혜’가 그것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을 쓸 때에는 이 용서의 은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특별히 이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약성경에서는 은혜라는 뜻으로 ‘카리스’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창세기 6장 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여기서 ‘은혜’라는 단어가 ‘헨’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상으로 이 말씀을 직역하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두 눈 속에서 은혜를 찾았다.”가 됩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은혜는 일반적이고 위대한 구원의 원칙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고 했고,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도 하나님은 다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두 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을 정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에스겔 33장 11절에도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고 말씀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무엇보다도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고 다 새 생명을 받아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운명을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미리 아셨고 그래서 그것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픔을 그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시편 81편 12절에는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선택에 개입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인간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받지 않으면 이미 주어져 있는 은혜가 결코 본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이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에게 복음의 위대한 원칙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마다’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 선택을 하나님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아버지의 사랑에 반응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는 귀한 자녀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에스더 5장 2절
  • 창세기 6장 8절
  • 디모데전서 2장 4절
  • 베드로후서 3장 9절
  • 에스겔 33장 11절
  • 로마서 8장 29절
  • 시편 81편 12절
  • 요한복음 3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