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영원한 제사장, 예수님

by webmaster posted Nov 29,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강의 오디오 듣기(MP3 다운로드)
강의 오디오 듣기(팟캐스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구하시는 분

대제사장은 ‘여호와께 거룩’이라고 새긴 정금패를 만들어 관 앞에 붙이고, 그것이 늘 이마에 있도록 머리에 쓰고 제사장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출 28:36) 거룩은 한자로 ‘성결(聖潔)’, 영어로는 ‘홀리니스(holiness)’라고 합니다. 사실 제사장은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여 바친 존재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제사장이 된 자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특권이 심히 크다는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가 특별히 드러내려 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에 예수님의 칭호가 대제사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대제사장의 모든 업무는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에 대한 모형들이었습니다.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위한 속죄의 봉사, 즉 용서를 구하는 기도와 제물을 드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없으면 성소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줄 존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대제사장은 무죄한 존재여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10장에 등장하는 아론의 두 아들은 술을 마시고 정신없는 상태로 고기를 구워먹던 불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다가 죽게 되는 참변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위기 10장 1〜2절) 하나님은 죄를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한 치의 죄도 용납하실 수 없고, 죄와는 함께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죄가 눈에 보이는 순간 태워버리시게 됩니다. 이것은 그분의 본능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만지면 안 되는 것을 만지려 할 때 그 아이의 엄마가 그것을 보는 순간 아이에게 해가되는 것을 순식간에 치워버리는 것처럼, 그것은 우리에게서 죄를 없애 버리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우시는 것은 죄이지, 죄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죄와 하나가 된 상태로 성소에 들어갔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 앞에 분향하는 순간 불에 타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들어가려면 제사장일지라도 반드시 무죄한 상태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은 죄 없는 생애를 사신 분으로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10절에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고난을 당하 시면서도 죄 없는 생애를 사신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때 죄와의 싸움에서 겪는 고난이었습니다. 죄란 성경적인 논리로 말하자면 자아를 사랑하는 삶이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노력할 때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시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아와의 투쟁이고 죄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겪는 그와 똑같은 시험을 예수님께서도 인간으로서 생애하시는 동안 겪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만을 사랑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은 곧 율법을 완성하고 의를 이루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고난으로 순종하여 무죄의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실 죄 없는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또 히브리서 4장 15절과 16절에서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으셨고, 인간의 연약함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눈물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분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인 동시에 제사장 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그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아브람에게서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받은 인물로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세기 14잘 18〜20절) 이후에 그는 구약성경에서 언급되지 않지만 신약성경의 히브리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브리서 7장 3절) 그는 족보도 없는 인물로서 예수님과 아주 흡사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이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6장 20절) 

영원한 대제사장,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구하시는 분이 이렇게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드려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그 어떤 기도도 응답될 수 없으며, 그 어떤 죄도 용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대제사장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죄 용서와 구원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이사야 53장 10절
  • 레위기 5장 14절부터 6장 7절
  • 예레미야 31장 3절
  • 이사야 53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