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십자가의 고통을 예표한 화목제

by webmaster posted Nov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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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제는 십자가의 파노라마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상징

지난 글에 이어 화목제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배운 소제가 예수님의 육체적 고난을 나타냈다고 한다면, 화목제는 주님의 정신적, 영적 고난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드시는 부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겠습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화목제로 드리는 제물은 다 예수님을 표상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의 피를 단에 뿌리고 제물의 기름과 콩팥, 쓸개를 단위에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의 흘리신 피와 기름과 두 콩팥과 쓸개를 태운 냄새를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냄새라 하시며 식물로 드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정신적 고통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겟세마네’라는 말은 ‘기름틀’이라는 뜻입니다. 감람(橄欖), 즉 올리브를 틀에 넣고 기름을 짜던 곳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바로 이곳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땀이 핏방울 같이 되어”(누가복음 22장 44절) 흐를 정도로 무한한 정신적 고뇌를 겪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고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그 운명을 저항하고 싶은 정신적인 고민이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레위기 3장에서 짐승을 잡았을 때 내장에 들어있는 모든 기름을 떼어내어 태운 것처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면서 주님께서는 몸에 가지고 계셨던 모든 진액을 다 태워버리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 그 죄악의 뿌리까지 다 가져가셔서 죄 자체가 되심으로 무시무시한 죄의식의 고통과 그 위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고통을 함께 겪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일념으로 죄의 저주를 단숨에 들이키신 그 아픔을 화목제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시고 광야에 계실 때에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면서 첫 번째로 당한 도전은 바로 식욕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는 것을 참지 못하고 선악과를 탐하여 타락했기에 그 죄악의 뿌리에는 탐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단이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우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리라 시험 할 때, 또 예수님을 유혹하며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줄 터이니 나에게 절하라는 시험을 할 때에도 예수님은 사단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이기심과 교만, 탐욕의 뿌리인 죄의 실체와 만나는 경험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40일을 금식하시면서 탈진으로 거의 죽어가는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그 죄의 실체와 만나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 지시고 죄의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시면서 주님이 겪으신 고통은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한 무시무시한 죄의식과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내장의 기름이 다 타들어가는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몸 안의 모든 진액이 다 말라비틀어진 마른 명태 같은 모습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분의 고통은 우리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화목제를 드릴 때에 불에 태우는 부분은 상번제 제물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상번제는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졌는데 아침 상번제를 드리는 시간은 오전9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천천히 불에 타서, 다 태워지는 시간이 오후 3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이 오전 9시였고, 운명하신 시간은 상번제 제물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되는 시간인 오후 3시였습니다. 저녁 제사를 드리기 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아 온 몸이 다 찢겨지셨지만, 그 육체적인 고난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화목제로서 받으신 정신적 고통이 그 몸의 기름과 진액을 다 태웠습니다. 정신적 고통에 의해 몸속에 생긴 독소들이 신장을 파괴했습니다. 사구체가 다 녹아서 핏 물이 되어 방광으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쓸개도 녹아 내렸습니다. 끝내는 견딜 수 없어서 심장이 터져 돌아가셨습니다. 심장이 터진 것은 이 모든 고난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신 그분에게 그 죄를 다 태워 없애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드시는 하나님의 음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고난을 마시고 먹었습니다. 불에 태운 냄새를 맡으면서 아들의 무지막지한 고난을, 그 기름이 타들어가는 고난을 하나님은 받아서 드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아들이, 혹은 내 딸이 그렇게 난도질을 당하고, 속이 다 녹아내리고, 태워져서 죽어간다면 그것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을 매달았던 십자가 주변이 낮 12시부터 캄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으셨던 하나님께서 그 장면을 가리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더 이상 아들을 보실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셨을 때 아들은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장 46절) 화목제는 이렇게 십자가의 파노라마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은 죄의 대가였습니다.

성경구절

  • 누가복음 22장 44절
  • 레위기 3장
  • 고린도후서 5장 21절
  • 마태복음 27장 4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