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붙드시고 보호하신 은혜로 남은 자
저번 시간에 이어서 로마서 11장을 공부할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11장 5절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엘리야 시대부터 남은 자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 남은 자가 과연 누구일까 그간 많은 학자들이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것은 이 남은 자가 무슨 재주가 있거나 행위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로마서 11장 6절)
아브라함의 생애를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이었고 자신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치려고 할만큼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헤미야 9장 8절) 느헤미야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모습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모습하고는 좀 다릅니다. 말씀에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여기 참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셔서 그와 언약을 맺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스스로 충성되고 견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충성되었다고 ‘아만’ 동사의 사역형을 써서 그의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라는 말이 말씀에 나타난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아브라함처럼 하나같이 하나님께 완전히 의뢰하므로 든든하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든든하게 세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남은 자’ 사상은 자기가 특별히 남들보다 선해서, 혹은 더 충성되거나 열심이 있어서, 자기 마음이 굳어서 남은 자가 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남은 자는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우고 충성되게 굳건히 만들어 주신 사람들입니다. 영어로 남은 자는 ‘렘넌트(remnant)’라고 합니다. ‘남다’라는 영어 동사 ‘리메인(remain)’에서 파생된 낱말입니다. 우리가 렘넌트로 든든하게 선 것은 우리가 굳게 의지를 세운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산성이 되시고 방패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남은 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구약이나 신약을 통틀어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은혜를 끝까지 의지한 자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야곱이 얻었던 이름처럼, 에서를 만나기 바로 전에 죽음을 앞에 둔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단순히 혈통적 이스라엘을 넘어 영적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25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온 땅에 복음이 전해져서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이 충만해지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도 말세에 복음을 위해서 위대하게 변증할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결국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 얻으리라 하신 이 ‘온 이스라엘’은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참 믿음으로 이스라엘이 된 자들, 이 모두를 아울러서 말한 것입니다.
성경구절
- 로마서 11장 1〜7절
- 느헤미야 9장 8절
- 로마서 11장 25~26절